사람이 본래 가진 마음, 태어난 순간의 마음씨를 '천연기념물'처럼 지정해 보호 할 수 있다면. 천연의 것. 자연. 그대로의 마음씨. 살면서 언제 어떻게 변화하거나 변질될지 알 수 없기에. 그 태초의 마음씨를 돌볼 수만 있다면. 삶이라는 희로애락의 긴 여정속에서 마음을 다 잡고 살기 어렵다. 증오와 분노, 사랑과 설렘, 화남과 삭힘, 그리움과 사무침, 미움과 무관심. 숱한 감정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 사람의 마음. 아름다울 때도 추할 때도 있는 그 마음. 추함과 아름다움 이전의 마음을 보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류산방에서 나온 책<한국의 자연유산 천연기념물의 역사와 그를 둘러 싼 이야기, 이선 지음>를 읽었다. 천연기념물이 무엇인지. 어떤 게 천연기념물이 될 수 있는지. 나도 주변의 자연을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천연기념물로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 멀게만 느껴졌던 천연기념물의 이야기가 이제는 손에 잡힌다. 이 땅에 있는지도 몰랐던 천연기념물. 그들의 모습과 사는 곳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한 책이다.
보은 속리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한편 2003년 문화재청에서 발행한 <천연기념물 백서>에는 "천연기념물은 자연의 역사와 가치라는 유산적 개념이 내포된 자연유산으로, 여기에는 야생이나 양축의 희귀동물, 희귀조류의 도래지·서식지·노거수나 희귀 식물 자생지, 희귀한 동식물류, 광물·화석, 저명한 동굴이나 특이한 지형·지질 및 천연보호구역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은 특히 진귀성과 희귀성, 고유성과 특수성, 분포성과 역사성을 지닌 특징으로, 이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민족의 삶과 풍속, 관습, 사상, 신앙 및 문화 활동이 얽혀있는 인류의 문화 환경의 일부로서 일반 동식물 및 지형·지질·광물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학술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자연 유산이면서 자연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앞서 정의한 것보다 천연기념물이 가지고 있는 유산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51쪽-
노거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려면 추정 나이도 많고 규모도 크며 생육 상태도 양호해야 하지만 역사적 내력도 중요하다. 노거수는 이 땅에서 수백 년 동안 여러 세대의 사람들과 같이 살아 왔으므로 사람들과 얽힌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그 역사적 내력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면 나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성균관대학교의 명륜당 앞에 심겨진 은행나무 두 그루가 그 좋은 예다.
-111쪽-
이 장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천연기념물이나 자연 유산 보존이 정부에서 알아서 할 행정의 대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변의 자연물을 애정 어린 시각으로 살펴보기 바란다. 정이품송이나 동네 어귀의 정자나무, 마을숲과 두루미는 함께 살아 온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애정과 의미를 부여해 주었느냐에 따라서 자연 유산의 의미와 문화적 맥락이 크게 달라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나라에서 가치 있는 자연 유산이 지금 지정된 천연기념물이 전부는 결코 아닐 것이다. 새로이 다양한 대상을 발굴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하려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175쪽-
노랑부리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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