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흐뭇해지고, 마음의 묵은 때가 씻기는 듯하다.
희고 고운 살결. 하얀 눈 밭. 순박한 한국인의 정. 넉넉한 마음씨. 시골의 아늑함. 조선의 얼굴. 한국인의 오랜 추억. 한국인의 바탕. 우리나라 자연의 바탕. 한국 미술의 저력.
달항아리를 보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유홍준은 책<안목>에서 달항아리를 다루는 부분에서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이란 제목을 달았다. 혜곡 최순우는 달항아리를 보면 잘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듯한 흐뭇함이 있다 했단다.
한국의 흰 빛깔과 공예 미술에 표현된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국의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55쪽에 수록된 혜곡 최순우 글-
달항아리 예찬론자들은 많았다. 책에서 밝히듯 미술사가 삼불 김원용(1922~1993)은 백자대호를 설명하는 글에 아래와 같은 시를 썼단다.
조선 백자의 미는
이론을 초월한 백의 白衣의 미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은 둥글지 않고, 면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를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놓으면
넘어지지야 않을 게 아니오.
조선 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 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 白衣의 민 民의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 古今未有의 한국의 미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을 캐고 미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59쪽 김원용의 <백자대호>-
삼성리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백자를 마주한 적이 있다. 순간 마음에 큰 달덩이가 비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허허로운 마음을 채우는 충만감. 백자를 구워내며 우리 문화의 결을 소중히 어루만질 줄 알았던 그 도공은 누구였을까.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
훗날 우리 문화가 어두운 길을 걸어갈 지언정, 조선 백자가 밤하늘의 달덩이처럼 캄캄한 길을 비춰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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