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나, 내 나무에 대한 나의 눈, 그리고 내 나무가 자신을 보는 눈에 대한 나의 눈을 변화시켰다. 과학은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레시피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과학은 또 한때 벌어졌거나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도 가르쳐줬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내 나무도 그중 하나이다.
-49쪽-
식물들에게 빛은 곧 생명이다. 나무가 자라면 아래쪽 가지는 새로 난 위쪽 가지들의 그늘에 가려 아무 소용이 없어져서 한물간 퇴물이 된다. 버드나무는 이렇게 못 쓰게 된 가지에 예비 식량을 저장해서 그 가지들을 살찌우고 튼튼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밑동 부분의 수분을 마르게 하면 가지가 깨끗하게 떨어져 강물에 떠내려간다. 물에 실려 흘러가던 가지들 100만 개 중 하나는 강둑에 쓸려 올라가 뿌리를 내린다. 얼마 가지 않아 원래 나무와 같은 나무가 다른 장소에서 자라는 것이다. 한때 가지였던 부분은 생각지도 않는 환경에 던져진 후 나무 둥치 같은 역할을 해야한다. 버드나무 한 그루마다 그렇게 꺾여 나갈 수 있는 가지가 1만 개 정도 되는데, 매년 가지의 10퍼센트를 잘라내서 물에 떨어뜨린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을 하다 보면 가지 한 개, 혹은 두 개 정도가 강 하류의 어디엔가 뿌리를 내리고 유전적 도플갱어로 자라날 것이다.
-135쪽-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사막은 나쁜 동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거기서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거기서 사는 것이다. 물은 너무 적고, 빛은 너무 많고, 온도는 너무 높은 상태. 사막은 이 모든 불편한 조건을 극대화해서 가지고 있는 곳이다. 생물학자들은 사막을 많이 연구하지 않는다. 식물이 인간 사회에 가지는 의미는 세 가지이기때문이다. 식량, 의약품, 목재.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사막에서는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막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정말 흔치 않고, 그렇게 하는 과학자는 종국에 가서는 자기 분야의 비참함에 이골이 나고 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고통을 날마다 견뎌낼 자신이 없다.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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