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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람여행

윤은경 시인 인터뷰, 풀꽃속 작은 우주를 만나다, 인터뷰의 추억

by 이야기캐는광부 2010.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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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스무날, 오늘은 시인과의 만남이 약속되어 있는 날이다.
누군가에게 사랑고백을 앞둔 것처럼 떨리고 설레었다. 드디어 시인이 환한 미소로 우리앞에 모습을 드러내셨다.우리는 감사의 편지가 담긴 장미꽃 한다발을 안겨 드렸다. 시인은 종이가방에 우리에게 선물 해 줄 시집을 가득 들고오셨다. 우리는 친필사인이 담긴 시집을 받고는 너무 기뻤다. 곧이어 아름다운 캠퍼스 잔디밭에서 풀꽃주위로 둥그렇게 둘러 앉은채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그 풀꽃속에 작은 지도를 펼치고 선생님의 시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시에서 드러나는 삶의 진실이 누군가의 가슴에 
                     울림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가 언제 맨 처음 시인을 찾아왔나요?
시를 좋아한지는 오래되었어요. 청소년시절에는 누구나 문학소녀소년아닌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중학교 3학년때 어머니께서 소월시집을 가지고 계셨어요. 어머니께서 여고시절때 직접 보시던 거였죠. 그 시집을 제게 읽으라고 주셨어요. 특히 '초혼'이라는 시가 가슴에 남았어요. 굉장히 절절하잖아요?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이름이여'라는 표현을 보세요.'초혼'이라는것은 죽은 사람을 부르는 의식인데요. 원래 고복이라고 해서 사람이 죽으면 지붕에 올라가서 옷을 흔들면서 부르는 거에요. 세 번을 부른다고 해요. 죽은 영혼이 돌아오길 바라오는 마음이겠지만 다시는 오지는 못하죠. 얼마나 애절하고 절절하면 초혼을 할까요? 거기에 나타난 이미지가 너무 애절하고 그래서 그때 당시, 제 감성을 흔들어 놓았나 봐요. 

그 때 시에대해서 처음 눈을 떴던 것 같아요. 여고시절에는 끄적끄적 낙서하기도 하고, 소박한 개인문집을 만들어서 친구들한테 나누어주기도 했었는데 그러다가 한동안 시를 잊고 지냈어요.

정말 진정하게 시에 대해 눈을 떴다면 손종호 교수님을 만나고 부터에요.
손종호 교수님을 만나서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르침도 받으면서 확실하게 이게 나의 소명이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찾아왔어요. 마치 운명처럼!

시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저는 한 번도 시를 쓰면서 쓰기 싫다거나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많이 힘든 때는 있었어요. 현실적으로 더 어려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오히려 시자체가 제 자신을 세워주는 버팀목이었어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시를 버리지 못할 것 같아요. 영원한 연인이죠!

시를 쓸 때 영감을 어디에서 얻나요?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해요. 여행은 돌아온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죽음처럼 영원히 못 돌아오는 여행도 있지만, 일상에서 떠나는 여행은 잠시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잖아요? 순환적인 거죠. 그렇게 다시 돌아온다는 전제가 있어서 그런지 잘 떠나요 제가.(웃음) 여행을 할 때 항상 어떤 근원에 대한 생각이 늘 마음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문화유적지같은 선인들이 남겨놓은 정신적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을 잘 가요.

그러다 보니 사찰이나 폐사지같은 곳을 자주 가요.직접 보면서 생각에 잠기죠. 탑도 만져보고, 풍상에 깎이고 낡아가는 것을 만져보면서 그 숨결을 느끼고 싶은거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시가 쓰고 싶고, 마음이 편하고 싶으면 자연속으로 가요. 내가 가는 곳중에 양묘장이라고 있어요.

거기가면 꽃나무 묘목들을 많이 가꾸어 났어요. 그것들은 그 나름대로 예쁘고 꽃도 피고 그러지만 저를 사로잡는건 따로 있어요. 바로 이렇게 자그맣게 피어있는 풀꽃들(캠퍼스 잔디밭에 핀 풀꽃을 가리키며)이 나를 매혹시켜요! 그 풀꽃이 얼마나 작으냐면요! 눈곱보다 더 작아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접사를 하면 크게 확대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들여다보면 눈물겹죠.
그렇게 너무나 작은 꽃인데도 불구하고 있을 것 다 가지고 있으면서 생명을 영위해 가거든요! 어떤 생명의 근원! 그러한 생각들이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어요..

'벙어리 구름'이라는 시집도 어떤 근원에 대한 탐구인가요?
초창기에 썼던 시편들을 수록했기 때문에 앞의 생각과는 조금 달라요. 굉장히 여러 방향으로 사유가 뻗어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거에요.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를 형상화한 것도 있고, 또 순수하게 어딘가를 가서 느낀 것들이 잔상처럼 녹아 있는 시도 있구요.
첫 시집은 여러 방법으로 내가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탐색하기 때문에
사유의 방향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어요.

'벙어리 구름'에 실린 작품중 '칡'이라는 시에서처럼 나이를 언급한 시를 몇 편 볼 수 있었어요. '마흔살'이라고 직접 제목을 붙인 경우도 있고요. 시를 통해 시인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요?
제가 서른 무렵에 시에 대해 본격적으로 눈을 떴어요.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는 그 힘겨운 세상때문에 스스로가 위축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 당시의 그런 어려움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려 했어요. 세상을 소화할 힘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런 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하기에 '칡'이라는 시를 썼던 것 같아요.
'마흔살'이란 시같은 경우를 들자면 마흔이면 불혹이라고 하잖아요.
세상에 대해서 미혹이
없어야 되는데 '나는 아직도 미혹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에요.
여성같은 경우는 타자화 되어있거든요. 중심이데올로기에서 주변화 되어있는 경우가 있어요.
여성들은 그런 것들을 심각하게 느끼기도 해요. 여성이 타자화되어 있는 것은 서구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는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특히 유교적인 분위기때문에 아직도 강하죠. 한편으로는 여성이기 때문에 자기 꿈대로 할 수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렇죠? 자기인생을 자기스스로 적극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부분도 있어요. 그 '마흔살'이라는 시를 보면 '새의 발목에 묶인 질긴 끈'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여성이기 때문에 자식이라든가 가정을 지켜야 한다든가 하는 일이 많잖아요? 이런 현실을 표현한 것이지요.

'산자고'라는 시를 통해서는 '어쩌면 꽃의 삶도 인간의 삶처럼 힘겨울 수 있겠구나'하고 느꼈어요. 이 시를 쓰시게 된 배경은?

                   "그 많은 밤과 낮의 괴로움이 사람의 길만이 아닌 것 /그 긴 기다림
                    /해발348미터 정상까지 오르는 / 산자고 흰 꽃잎
                    ...................
                    바라보기도 눈부신 / 우주의 한 길"  <'산자고'중에서 >

산자고는 순식간에 쓴 시중 하나에요. 익산에 심호택 시인이 살아요.
예전에 김영탁시인과 김영찬시인과 함께 심호택 시인 집을 찾아갔어요.
거기서 시인들이 걸맞지 않게 삼겹살도 먹고 복분자술도 한잔씩 했죠.(웃음)
시인의 안내로 어떤 산을 올라갔어요.

그 때가 3월 15일이었는데 산자고 꽃이 피기에는 아주 이른 때에요. 4월 초에 되어야지 그 꽃이 피거든요. 제가 막 지나가다가 저쪽에 그 꽃이 피어있는 거에요. 진달래가 막 필땐데.
너무 여려 보였어요. 풀꽃같은 경우 너무 여리잖아요.그런데 이 꽃이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 산에서 피려고 이른 봄에 그 겨울의 능선을 넘어오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그것만이 아니라 이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생명'이라는 것이 꽃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하고 생각했어요.
사람도 꽃핀다고 하잖아요? 생명이 꽃피는 것처럼.
어떤 길을 찾아가는 것, 우주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사람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산자고 꽃이 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어떤 우주적인 사건이 아니냐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에요. 수많은 세월, 우주의 나이가 150억년이라면 그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꽃이 피기위해서 견뎌왔던 그 수많은 밤과 낮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꽃도 우주적 차원에서 봤을때 같은 생명의 무게로 피는 거죠.

그런 생각을 '바라보기도 눈부신 우주의 한길'이라는 구절로 표현했어요.
나도 어떤 무엇인가가 꽃피기를 바라고, 시로써, 인간으로서 제대로 꽃피기를 바래 왔죠. 나도 열심히 걸어왔는데, 그 산자고 흰 꽃잎을 보니까 그보다 더 절절하게 피는게 있었구나하고 깨달은거죠. 이러한 생명의 법칙이 '우주의 한길'이 아닌가 하고 상상력을 확산해본 것이에요.

시집 '검은 꽃밭'(7월초 출간예정)에 수록될 작품들을 읽으면서 선생님 마음이 정말 크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생관, 세계관이 폭넓게 담겨있었어요. 특히 '이 봄엔'이라는 시를 읽고 이토록 넓은 우주에서 인간은 정말 아득한 존재라고 느꼈어요. 이 시에 담긴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검은꽃밭'이라는 시집에는 전반적으로 현실적인 죽음에 관한 생각들이 담겨있어요.
죽음은 그 안에 '재생과 부활'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은 끝이지만,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이 탄생하는 거잖아요...
우리가 죽어서 그 뼈와 살은 흙으로, 폐로 숨쉬었던 것들은 공기 속으로 다 날아간다고 해도 그 숨결이 어느 흙에 배거나 해서 또 하나의 생명을 이룰 수 있는 거죠. 생명을 세포까지 작게 분해해 나가면 결국은 물질이거든요. 우리가 죽는 다면 그렇게 다 흩어질 꺼에요...

그러면 그것이 수목을 이루기도 하고 뿌리를 통해 들어가 그것의 어느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럼 꽃으로도 필 수도 있죠! 어떤 짐승이 나의 어떤 한 부분을 먹는다면 나는 또 그 짐승의 일부분이 되는 거잖아요! 생명이라는 것은 순환하면서 무기물로 존재해 있다가 어는 순간 또 다른 생명을 가질 수도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현재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는 것도 선연선과죠.(웃음)

저는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런 생각들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봄엔'이라는 시같은 경우 '기막힌 이별하나 했으면 좋겠다'라고 시작돼요. 왜 하필이면 기막인 사랑이 아니라 기막힌 이별이라고 했을까요. 기막힌 이별이 결국은 사랑을 배태하고 그 출발이 된다는거죠. 끊임없는 이어지는 생명의 법칙이 시작이 된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영원한 생명성이 귀하게 생각되었어요.

갑자기 궁금한게 생겼습니다. 저희가 나중에 죽어서 서로 다른 꽃으로 태어나는거에요! 선생님은 이 쪽, 조청학생은 이 쪽 그리고 저는 저 쪽에 꽃으로 피어있다고 한다면! 그때도 저희가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웃음) 생명의 기는 서로 통한다고 해요.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정일근 시인이 있어요. 시인의 작품중에 '우리 이승의 사랑끝나고 그대는 죽어 복사꽃 나무가 되리라 나는 죽어 한 마리 은어가 되리라'로 시작하는
‘별사'는 시가 있어요. 어느 순간에 흐르는 물가에 그대가 복사꽃으로 피어 있을때 은어가 되어 거기를 지나가면 까닭없이 눈물이 지어지고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으며 지나 갈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그 꽃도 은어가 지나가는 걸 보고 어떤 슬픈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죠.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로 서로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그 존재감이 안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요?(웃음)

무한경쟁시대속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살아가요. 아르바이트, 취업준비와 같은 바쁜 일상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요새 젊은들이 가졌으면 하는 생각과 놓치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요즘들어 나이먹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많이 험악해 있잖아요.
제가 딸한테 그랬어요. 네 인생의 계획을 짜라! 언제쯤 결혼하고 아기를 날 것인지 그리고 언제쯤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에대한 이런 계획을 짜라고 했어요! 최소한 10년뒤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말이죠.

세상에 대해서 또 나자신에 대해서 존중감같은 것이 있어야지 그런 계획을 세 울 수 있는 것이거든요. 거기에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담을 수 있어요.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는거에요. 눈앞에 있는 것만 취하기에 바쁜 것 같아요.

또 젊은이들이 시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시는 순수하게 어떤 것에 대해 표현을 하잖아요. 순간을 포착하면서 거기에 어떤 생각도 응축하기도 하죠. 시를 쓰면 대부분은 그 시에 고운 마음이 담겨지게 돼요. 감정을 순화시키죠. 또 철학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거잖아요. 시도 마찬가지에요.시에서는 언어가 주는 미감같은 게 있어서 자꾸 거칠어지는 마음을 다스리게 해줘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시도 많이 읽고, 인생의 근원에 대해서 좀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그러면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할 때도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요. 반성적인 삶을 살게 되니까요. 반성한다는 것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고, 한발 물러서서 두발 걸어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에요.

프랑스에서는 국어교욱을 자기나라 시를 외우게 한다고 해요. 시는 그 나라 언어를 가장 아름답게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고, 사람의 마음도 순화시키는 기능이 있으니까요. 이 학생들은 500편이상의 모국어 시를 외울수 있다고 해요. 그렇게 되면 세상이 아름답지 않겠어요?

윤은경 시인은?
출  생 : 1962년 충남 공주

등  단 : 1996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수  상 : 1996년 계간 신인상 <시와시학>
대 표 작 : 시집 <벙어리 구름>
좋아하시는 것 : 들에 피는 꽃, 사진찍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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