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9년 2월 희망제작소 3기 시민기자 활동중에 쓴 글입니다. -
대전점자도서관’은 대전시 안에서 ‘점자 도서관’으로서는 유일하게 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운영되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대전 시각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점자도서, 녹음도서, 전자도서를 제작해 무료로 대출해주고 있다. 또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학습교재를 만들어 주고, 각종 시정소식이 담긴 점자 월간지를 발간하여 배포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무료다.
현재 전국 시각장애인 수(1급~6급)는 22,061명(보건복지부 통계자료, 2008 )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 중 6,188명(보건복지부 통계자료, 2008)이 대전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1960년에 한국 최초로 건립된 '한국맹인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 시·도 곳곳에 점자도서관이 생겨나고 있지만 열악한 환경을 면치 못하는 곳이 많은 실정이다.
‘대전점자도서관‘역시 시각장애인들의 마음에 창문을 달아주는 일을 몇 년째 계속 해오고 있지만 적은 인력과 부족한 재정으로 꾸려가야 하는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점자 도서에 숨결을 불어넣어 시각장애인들이 그 안에서 푸른 나무와 숲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2월 18일 수요일, 황정숙 업무팀장님을 찾아 갔다. 먼저 책내용을 음성으로 녹음시켜 제작하는 녹음도서에 대한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 녹음 도서를 제작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고 알고 있습니다.
녹음 도서를 만들려면 2~3달은 족히 걸려요. 녹음 봉사를 해주는 분이 있는데 하루에 녹음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요. 2~3시간동안 녹음을 하다보면 목이 메어서 오랫동안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또 그런 특수한 봉사를 할 수 있는 분들이 적기 때문에 서울에서 제작된 녹음 도서를 사오는 경우가 많아요.
▲녹음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녹음 도서들이 꽂혀 있었다.
▶ 점자도서 제작과정이 궁금합니다.
점자책을 만들려면 한글로 된 원고가 필요해요. 책 한권에 있는 내용을 한글로 입력해야 하고 또 그 내용을 교정해야 하죠. 한글을 점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오타가 난 부분을 찾아야 하고, 특수기호처럼 지원이 어려운 부분도 손봐야 하거든요.
또 책 제본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고 있어요. 저희는 브레일로200(BRAILLO200)이라는 인쇄기계를 쓰고 있는데, 용지가 붙어 나와서 사람이 한 장 한 장 뜯어내야 합니다. 기계로 전부 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없어요. 그나마 브레일로400(BRAILLO 400)이 낱장으로 뜯어져 나오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후자의 경우 1억 3천만원을 호가하거든요. 또 국내생산이 안돼서 모두 수입해서 쓰고 있어요. 현재 쓰고 있는 기계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흫 통해 어렵사리 지원받은 거구요.
▲브레일로200(BRAILLO200)라는 인쇄기계가 점자를 찍어내고 있다.
▶ 대출서비스는 우편으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사실 시각장애인분들은 봉사자 없이는 외출이 힘들어요. 차량문제나 이동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죠. 현재 거의 모든 책을 우편으로 대출해 드리고 있어요. 대통령령에 의거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보내는 우편은 무료거든요. 반납해야되는 도서도 우편으로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령 제 10197호에 따르면 '맹인에게 우송되는 우편물(국내는 6㎏, 국외는 3㎏)은 무료로 발송할 수 있다'고 한다.
▶ 한편 점자도서 같은 경우 일반 책과는 다른 관리방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점자책을 쌓아두지 않고 세워서 보관하고 있어요. 점자는 오래되면 눌리기 때문이죠. 손을 사용해서 읽다보니까 여러 사람이 보면 글자가 점점 눌려서 들어가게 되죠. 일반종이보다 두껍고 비싼 특수용지를 쓰고 있어서 점자가 잘 눌리지 않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거든요.
▲점자도서는 사진속 갈색가방에 담아 무료우편으로 대출해 주고 있다
▶ 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대전시정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다고요?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매월 대전시정소식지뿐만 아니라 구정소식지도 발간하고 있어요. 시청으로부터 E-MAIL로 원고를 받아서 인쇄, 편집, 교정, 출판까지 이곳에서 한꺼번에 다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도 대전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을 받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한 달에 2,000여 권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 이야기를 들을수록 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있어 예산이 참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전시나 정부의 예산지원은 예전보다 나아졌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장애인복지시설이면서 도서관이다보니까 문화관광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있어요.
하지만 도서관을 꾸려 나가기위한 운영비가 아닌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진행하는 사업비 일부만 지원받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을 운영하는데 있어 재정이 열악한 상태입니다.
운영비까지 지원받으려면 장애인복지시설로 등록이 되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저희는 아직 등록이 안 돼 있어요.
▶ 대전시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고 보는지요?
대전에는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비롯한 맹학교가 따로 있고, 한밭 도서관 같은 경우 그 안에 시각장애인실이 있어요. 저희와 비슷한 일을 그쪽 도서관에서도 하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보면 시에서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 도서관만 보면 아직도 열악한 편이죠. 타 도시에 있는 몇몇 점자도서관은 장애인복지시설 등록이 되어 있어서 운영비도 지원받고 문화관광부로부터 사업비도 따로 지원받으며 운영이 잘되고 있거든요.
▶ 점자도서관을 따로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이 확실히 전문성을 높일 수 있고, 도서관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진정한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하던데요.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공공도서관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공공도서관은 일반인들이 구하기 어려운 원서나 전문서적 그리고 값비싼 책들을 구비해 놓고 있어요. 열람실, 휴게실, 문화공간도 함께 만들어서 시민들의 쉼터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죠.
점자도서관도 그런 공공도서관처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 안에서 그분들이 언제든 도서대출, 음악 감상 그리고 영화감상과 같은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거죠. 바로 이런 일 자체가 전문성이 되는 겁니다.
만약 점자도서관이 ‘시각장애자복지회’와 같은 단체 안에서 한 부서로만 머물러 있다면 추진 할 수 있는 사업이 한정될 수밖에 없거든요.
한국의 점자도서관은 대학교나 시각장애자복지회의 부설기관으로 존재하거나 '한국점자도서관'과 '부산점자도서관'처럼 사단법인으로 독립되어 운영되기도 한다.
▶ 이 곳 점자도서관의 경우 전문성을 더 키워 나가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학습지원이 굉장히 열악해요. 하루 빨리 홈페이지를 갖추고, 녹음 도서를 MP3 파일로 올려서 웹상으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간서적을 제때에 구비해 놓는 일과 점역 및 교정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필요하구요.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넉넉한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고민인거죠.
▶ 전문성과 더불어 시민들의 참여역시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피시니어나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녹음봉사, 워드입력봉사, 직접자원봉사, 자금 후원 등이 있어요. 워드입력봉사는 조금만 배우면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일반 책에 담긴 내용을 타자로 쳐서 그대로 옮기면 되거든요. 반면 녹음봉사는 목소리가 좋은 분들을 선별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 수도 적고 시간이 많이 걸리죠.
또 직접자원봉사는 말 그대로 도서관에 나와서 점자책 만드는 일을 도와주거나 이곳에 방문하는 시각장애인들을 곁에서 보조해주시는 활동이에요. 더불어 자금후원도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점자책을 인쇄하는 기계는 너무 비싸서 갖춰놓기가 힘들어요. 보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책을 받아볼 수 있으려면 좋은 장비가 꼭 필요하거든요.
▶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복지사업을 하는 만큼 그분들을 대할 때 올바른 에티켓을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 ‘안녕하세요’라고 말로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보통사람 같으면 인사하는 사람이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목소리만 듣고는 누구인지 잘 모르거든요. 그분들은 촉감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손을 잡아드리며 인사를 하는 게 올바른 에티켓입니다.
또 무엇인가를 알려 줄 때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식사하는 것을 도와줄 때 ‘오른쪽에 숟가락이 놓여 있고, 그 숟가락옆에 국이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자세히 전달해 주어야 하죠. 그러면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쉽게 식사를 하실 수 있거든요. 이것은 길을 안내해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 매년 11월 4일마다 문화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2009년엔 어떤 계획들을 세워놓고 있는지요?
‘시각장애인과 함께 영화 관람하기’ 를 계획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들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건 편견이거든요. 또 1박 2일로 갔다 올 수 있는 야유회 프로그램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도서관 이전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2층에 있다 보니까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가 많이 불편하거든요.
11월 4일은 점자의 날로써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하여 반포한 날이다. 대전점자도서관은 82년째를 맞이한 2008년 점자의 날에도 각종 문화행사를 치룬 바 있다.
▶ 앞으로 10년 후의 도서관을 꿈 꿔 본다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요?
현재 도서관 건물을 임대로 쓰고 있어요. 언젠가는 서울의 한국점자도서관이나 부산의 점자도서관처럼 도서관만의 건물이 지어졌으면 합니다. 또 책들을 진열해 놓고, 기타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와 더불어 시각장애인들이 편히 즐기며 영화도 보고, 음악도 감상할 수 있는 쉼터로써 얼른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죠.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는 대전시정소식지 2월호를 선물로 받았다. 소식지를 펼쳐 본 순간, 흰 눈밭 위를 거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검은색 잉크가 아닌 눈송이처럼 하얀 점자들이 흰 종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자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흡사 눈밭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한번 눈을 감고 점자들을 더듬다가 어느 한 점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눈을 뜨는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그 작은 점으로부터 시각장애인들이 세상과 만나는 기쁨이 샘솟고 있음을.
[글, 사진_김기욱 / 해피리포터]
'인터뷰, 사람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 씨네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니까! - 우체국 집배원 임혁선배님 인터뷰 (0) | 2010.08.01 |
---|---|
블로그는 농촌의 희망을 일구는 제 2의 농기구 (2) | 2010.07.28 |
윤은경 시인 인터뷰, 풀꽃속 작은 우주를 만나다, 인터뷰의 추억 (0) | 2010.04.16 |
손숙대표님을 만나다. 2008년 4월 인터뷰의 추억 (0) | 2010.04.16 |
돌멩이로 태어나 세상 모든 걸 몸으로 겪어보고 싶은 미래의 사회적 기업가, 24살 청춘 장재남 (2) | 2010.04.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