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김 씨네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안다니까!
김 씨네 집 밥숟가락은 몇 개일까? 내 주변엔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있다. 바로 유성 우체국에서 7년차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임혁 선배(33세)다. 이제는 누구누구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꿰고 있을 정도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선배를 만나 대뜸 물었다. “지금도 손 글씨로 쓴 편지가 많이 있어요?” “한 5장? 이를 테면 군대에서 오는 편지 2장, 교도소에서 오는 편지 2장, 연애편지 1장정도. 요샌 편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 따뜻한 편지보다 고지서가 총알처럼 더 많이 날아오는 세상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또 고지서 들고 왔냐며 자기를 피할 때도(?) 더러 있단다.
선배가 오토바이타고 만나는 사람들은 실로 다양하다. 시골집에 가면 보자마자 등 긁어 달라는 할머니가 있고, 어느 동네를 다니다보면 보기에도 안쓰러운 소년소녀가장들이 있다. 어느 날은 골프선수 박세리 집에 가서 우편물을 전해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선배는 주변 이웃들과 늘 가까이에서 호흡한다. “이웃들에게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주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해 줄 수 있어. 그래서 이 일이 보람찰 때가 많아.”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선배는 정말 김 씨네 집 젓가락 개수까지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선배는 보통 아침 7시에 출근하여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우편물‧등기‧소포들을 구역에 맞게 분류한 다음, 집집마다 배달해주는 게 주요 업무다. 그 중 유별났던 우편물은 없었을까? 역시나 있었다. “어떨 때는 귀뚜라미, 새들도 들어온다니까. 하기야 신호등까지 배달해주는 외국 어느 나라보단 낫지.” 이처럼 집배실안에선 가끔 진기한 풍경도 벌어진다.
갑자기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집배원에게 필요한 자질이 뭘까요?” “사람들에게 우편물을 전해 주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중요해. 우편물 하나하나마다 소중하지 않은 게 없거든. 또 우리들은 이웃들을 위해 손과 발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니까.”
하루 종일 돌아 다니다보면 힘드시지 않느냐는 말에는, “사실 힘들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샌 잠이 늘었어(웃음). 그럼에도 우체국 안에는 많은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탁구, 사진, 축구 동호회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집배원 봉사단까지 있으니까 말이다.
이어서 남다른 고충도 듣게 되었다. “우리는 남들이 편히 쉴 때 더 바빠. 명절, 크리스마스, 발렌타이데이 같은 날이 그렇거든. 때로는 가족들의 기념일도 잘 챙겨주지 못 할 때가 있어.”
한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그 때는 크리스마스카드를 한 번에 묶어가지고 다니니까, 자꾸 눌려서 그런지 징글벨 소리가 계속 나지 뭐야.” 누군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징글벨 소리가 선배에게는 징글징글하게 여겨질 만도 하다.
평소 선배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을 좋아한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찾아보면 바위를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고민부터 하지 말고, 일단 해봐.” 그 말이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선배와 헤어지고 나서, 사시사철 꼼짝 않고 서 있는 빨간 눈사람을 만났다. 우체통이 바로 그 주인공. 그 앞에 서서 손 글씨로 쓰인 편지가 눈처럼 수북이 쌓이길 소망해 보았다.
출처 : 월간샘터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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