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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프린터가 고장났다. 고장난 게 아니라 USB 인식이 안된다. 고장났다고 표현하기엔 좀 그렇다. 일은 멈추지 않는다. 귀에 윙윙대는 프린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A4용지는 멀뚱멀뚱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채 쌓여있다.
무언가를 인쇄한다는 건, 꽤나 복잡한 과정이다. 한글 파일을 열고, 오타를 수정하고, 그럴싸하게 문서를 만들고. 컬트롤 피를 눌러 인쇄창을 불러오고, 공급용지에 맞춰, 또는 현재쪽만, 또는 두쪽 모아찍기로 인쇄한다. 그러면 프린터기는 정보를 받아들여 잉크를 하얀 종이위에 점점이 찍는다. 사각형의 종이에 갇힌 활자들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검은 결재판을 가져간다. 그 안에 인쇄물을 끼워넣는다.
또는, 세절기로 가져간다. 지이이이잉. 아니면 복사기로 가져간다. 똑같이 복사되는 하루.
나의 하루도 누군가 복사기에 올려놓은지도. 아니면 내일도 누군가 복사기에 올려놓은지도.
프린터기로 만원짜리를 뽑는 상상을 해본다. 이런 범죄같은 상상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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