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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에세이/일상끄적

아재의 주말

 

이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내 코딱지 크기일 것같은 코로나19.
이 지구상에서 후벼 파내고 싶은 바이러스 새끼. 
애 때문에 하도 써서 내 코의 때가 묻은 마스크.
그 옆을 지나 베란다로.
아 쉬….씨레기 위에 똥을 싸질러놓은 비둘기 뒤통수와 마주침.
아…문 열고 뒤통수 한 대 세게 때리고 싶은데…참는다.
비둘기 새끼들의 공중화장실을 애써 외면하고
남은 창문들을 활짝연다.
다이슨 짝퉁 청소기를 잡아든다.
“총각이 향기 나게 하고 살아야지.”
“누가 보면 유부남인 줄 알겄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이 퀴즈탐험 신비의 현상.
냄새의 근원을 찾아 한 마리 야생 짐승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집 안을 누빈다.
그래…청소라도 잘 하고 살아야지.
청소기로 방과 거실을 쓱쓱 밀고 다닌다.
그럼에도 자다 일어나서 세수를 했지만 꼭 세수를 안 한 내 얼굴 같은
이 제기랄 같은 모습.
어머니가 사다주신 밀대가 있다.
가로등 불빛아래 폼 잡고 기대어 있는 영화배우처럼 몇 주째 그렇게 있는 밀대.
결국 무시하고 청소기로만 민다.
아..할 거 졸라 많아…궁시렁 궁시렁…
세탁기를 돌린다. 
아…돌릴 거 졸라 많아…궁시렁 궁시렁..
헹굼에 불이 들어오고
얼마 후 쪼르르 물 빠지는 소리. 
어느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고 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저쪽 물숲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처럼
내 마음 이쪽에 폴짝 뛰어드는 생각.
‘아…설거지도 해야지..’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틀고
수세미에 퐁퐁을 묻혀 그릇을 닦음.
몇일째 물에 담겨있어 밥풀이 뿔어버림.
‘아…졸라 귀찮다…화장실 청소도 해야되는디..’ 
큰 맘먹고 욕실로 가서 변기와 바닥을 쓱쓱 닦는다.
닦으면 닦을 수록 태가 날 듯하다가 결국 
청소한 티가 안나는 신비한 현상.
대충 청소하고..그냥 나와버린다.
집을 통째로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집을 널어버리고 싶은 생각.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내 마신다.
분명 썩어가는 음식이 담긴 반찬통과 눈을 마주쳤는데
나는 빛의 속도로 외면하고 만다.
계속 눈에 밟히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좀 투명하고 초록불빛같은 새끼.
택배 박스와 맥주캔.
쓰레바 질질 끌고 내려가 버리고 온다.
슬슬 배고픔.
아…밥 먹어야지…
주말은 늘 아점.
계란을 탁…
촤아아아…
뒤집고 뒤집고…
무생채를 꺼낸다.
우리집 냉장고와 고향집 냉장고 연결되어 있으면 하는 상상.
어머니가 바로 내 냉장고를 통해
김치찌개를 건네주셨으면 하는 상상.
이따 저녁쯤엔 또 배달의 민족 앱을 키겠지.
책상 앞에 앉는다.
책을 읽는다.
이 시간이 좋다.
아재의 주말은 나름 바쁘게 흘러간다.
벌써 12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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