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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독서노트(642)마흔의 문장들

by 이야기캐는광부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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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참 빠르다. 페라리, 포르쉐와 같은 스포츠카보다 빠르다(?). 우주를 날아가는 우주선보다 빠른 느낌이다.


 

영국의 방송인 조 리셋이 자신이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처럼, 마흔의 문턱에 선 나 역시 내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스무 살쯤에는 확실히 내가 외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요즘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도 얼마 없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그다지 관심이 안 가고, 음주가무도 예전처럼 재미있지 않다. 정확히 성격 요인 검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수치상으로 보면 분명 어렸을 때보다 외향성 수치가 낮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들도 역시 스스로 예전보다 훨씬 덜 외향적이 된 것 같다고 한다. 외향적인 활동들에서 얻는 기쁨이나 만족감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데 다들 동의하는 게 재밌었다. 대학 다닐 때는 점심, 저녁으로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그러다가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으면 동아리 방에라도 기웃거리며 밥 동무를 찾았건만. 이제는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 한두 명과 함께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 혼자 조용히 먹는 게 더 좋다니, 그동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람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성격도 변한다.”

  모순적으로 들리는 이 두 문장에 경험적으로는 공감이 된다. 이는 개인의 5대 성격 특성의 수치가 삶의 단계와 나이에 따라 분명 달라지지만, 같은 연령 집단 내에서의 상대적인 순위나 한 개인 안에서의 상대적인 수치는 꽤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과 자긍심처럼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동시에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비슷한 행동을 계속하도록 부추긴다. 수치심이나 죄책감처럼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험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경고가 된다. 이런 자부심과 수치심의 저울 사이에서 우리의 자존감이 결정된다. 즉, 우리의 자존감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 결과 마흔이 된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 외출할 때 입을 옷을 하나 고를 때에도, 장례식장에서 조의금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될지 고민될 때에도,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 다른 사람의 행동,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적 비교와 인정에 훨씬 민감하다. 머리 스타일 하나, 패딩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남들과 똑같아지려고 인생을 낭비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현상이 과도하게 흘러가는 지점을 지적하는 것일 테다.

  혹 누군가는 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그렇게 연연하냐면서 남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들의 평가에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마음과 수치심, 죄책감 등의 사회적 감정은 기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주었던 마음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계속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자긍심이나 자부심 같은 긍정적 감정뿐만 아니라 수치심,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함께 따라다닐 것이다.

 

- 밀리의 서재 책<마흔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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