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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독서노트(641)꿀짐과 똥짐, 플랫폼 노동자...

by 이야기캐는광부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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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쿠팡 로켓배송을 이용한다. 쿠팡플렉스들은 생수와 같은 무거운 짐과 면도기 같은 가벼운 짐을 달리 부른다고 한다. 그게 바로 똥짐과 꿀짐. 플랫폼 노동자라고 불리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별 다섯개 부탁드려요!>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전날 밤 11시에 주문하면 이튿날 아침에 배송되는 로켓 배송(로켓 와우 회원은 배송비가 무료다.)이 일상화되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상품 가격이 오프라인 쇼핑보다 월등히 낮아지면서 최근 생수, 음료수, 쌀 같은 무거운 물건은 마트에서 사는 대신 배달시키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늘어난 만큼, 진용 씨 같은 플랫폼 배송 기사가 들어야 할 짐의 평균 무게도 함께 늘었다.
 ‘똥짐’과 ‘꿀짐’. 쿠팡 플렉스들은 배송 물건을 이렇게 부른다. ‘똥짐’은 말 그대로 배송 단가는 같은데 옮기기 힘든 생수나 소형 가구처럼 무겁고 부피가 큰 상품이다. 반면 ‘꿀짐’은 면도날, 마스크 팩, 볼펜 등 박스 크기가 작고 가벼워 배송하기 쉬운 상품이다. 이런 꿀짐은 똥짐에 비해 배송 속도가 2배 정도 더 빠르다. 시간이 곧 돈인 플렉스들은 이 둘을 어느 정도 비율로 배정받는지에 상당히 민감하다. 쿠팡 물류 캠프 직원들이 무작위로 배정한다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현장에서는 항상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제 다음 배송 권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쿠팡 플렉스 앱이 친절하게 다음 배송지를 알려준다. 앱에 나타난 지도 한쪽에 수많은 점(배송지)이 몰려 있다. 여기에서 7km 떨어진 1,000세대 이상이 거주하는 대단지 아파트다. 진용 씨는 지도 위 점이 사라질 때마다 마치 ‘게임 미션’을 수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똥짐일지 꿀짐일지 알 수 없는 복불복 미션을 수행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배송한 박스 수만큼 통장에 배송 수수료가 쌓인다는 것이다. 흘린땀방울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미션을 클리어 할 때마다 코인이 쌓이는 게임처럼, 진용 씨에게는 69건의 미션과 그에 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 밤이 지나기 전에 그의 SUV 차량은 서둘러 다음 미션을 향해 달려간다.

 


 

그때는 플랫폼 노동이 무엇인지, 4대 보험이 적용되는지에 대한 정보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정직하게 흘린 땀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이라는 재능으로 열심히만 하면 꿈꾸던 미래로 데려다 줄 ‘징검다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진용 씨는 얼마 전 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받으면서 사업 소득 3.3%를 떼는 개인사업자 신분이고, 플렉스를 통해 번 소득은 인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출 자체가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직업이 ‘플랫폼노동’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잠자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는 직업인 건 분명하지만 기업도 은행도 제도도 ‘직업’으로 인정하지도 보호해 주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플랫폼 가사 노동자는 고객이 매긴 별점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그 등급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 별점이란 것이 늘 공평하고 공정하지만은 않다. 왜 5점 만점에 5점이 아닌지,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1점이 깎인 건지 노동자는 결코 알 수가 없다. 그저 주어지는 별점을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별점뿐만이 아니다. 고객이 부당하게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만 가사 노동자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얼마 전 동희 씨는 한 고객에게 청소가 하나도 돼 있지 않은 것 같다는 항의 문자를 받았다. 싱크대 위에 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내용만 보면 동희 씨가 청소를 꼼꼼히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경우 동희 씨가 실수로 놓친 건지 아닌지 정확한 확인이 필요한데, 이것을 확인하는 것은 플랫폼 회사가 아닌 동희 씨 몫이다.

 

다시 고객의 집으로 향하는 동희 씨. 확인해 보니 고객이 청소가 돼 있지 않다고한 부분은 동희 씨가 분명히 청소한 부분이었다. 청소할 때도 흰 가루가 계속해서 떨어져서 여러 번 청소했던 곳이다. 알고 보니 고객은 인테리어 시공 때문에 생긴 문제를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라 오해한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고객은 정확한 요인을 파악하는 대신에 항의를 하고 별점을 낮게 주면서 후기에 불만을 쏟아낸다. 

 


예를 들어 수제화라면, 신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매장을 직접 방문해 발 사이즈를 재는 작업이 필수다. 하지만 철우 씨는 매장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핸드폰으로 발 사이즈를 재서 맞춤 수제화를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발 길이, 폭, 발의 특징을 촬영한 뒤, 고객과 직접 전화 통화해서 그 밖에 요청 사항을 취합해 고객 맞춤형 수제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에 관심을 갖는 업체들도 많아 철우 씨의 프로젝트는 순항 중이다. 직장 다닐 때에는 그저 주어진 일만 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되니 좋아하는 분야를 좀 더 눈여겨보고 거기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많다. 온라인 수제화 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도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플랫폼 노동은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트렌드다. 사람들은 플렛폼으로 더욱 활발하게 소통하며 노동 역시 플랫폼으로 거래한다. 과거에는 학연, 지연, 혈연 등 인연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명한 말처럼 말이다.


철우 씨도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일하던 때가 있었다. 그 덕을 보기도 했지만, 회사 다닐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인간관계였다. 상사와 동료들을 챙기고 친하게 지내야 하고, 한두 번씩은 만나서 식사하며 회식도 해야 하는 등 일보다 신경 쓸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플랫폼에서 일하면서 이런 것들은 대부분 후순위로 밀려났다. 플랫폼에서 맺는 인간관계는 매우 쿨한데 한마디로 일만 하고 헤어지는 관계다. 그것도 서로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해 주면 되는 쿨한 사이라서 일만 잘하면 다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술 한 잔 하자”, “밥 한 번 먹자”는 의례적인 말조차 필요 없다. 그저 이번에 일을 잘하는 게 최선이고, 다음에 또 일하자는 이야기가 최고의 칭찬이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플랫폼 노동에 뛰어든 철우 씨는 플랫폼 노동이 가장 현대적인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배달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달 플랫폼마다 ‘혁신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혁신의 핵심은 라이더들이 꺼리는 똥콜의 수락률을 높이는 것. 한 배달 대행 플랫폼은 할증 지역을 배달 앱 지도에 표시한다. 예를 들어 현재 서울 서초구에 라이더들이 부족하면 이 지역에 ‘×1.5’ 알림을 띄운다. 기존 배달 수수료의 1.5배를 지급하는 프로모션 정책을 펴는 것이다. 반대로 강남구에 배달 라이더들이 밀집해 있다면 ‘×0.9’로 표시한다. 라이더들이 몰려 있으니 수수료가 낮아진다. 플랫폼 기업의 개별적인 지시나 강요는 없지만, 강남구에 있던 라이더들은 서초구로 이동해 배달 수요를 채운다.


또 다른 배달 플랫폼 알고리즘은 ‘경매 제도’를 이용한다. 배달 대기 화면에 수락되지 않는 똥콜이 있으면 ‘+500’ 복주머니가 달린다. 기존 배달 수수료에 500원을 더해 지급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수락하는 라이더가 없으면 ‘+1,000’, ‘+1,500’으로 복주머니 가격이 오른다. 라이더들은 복주머니를 ‘떡밥’이라고 부른다. 알고리즘 상사가 일종의 낚시꾼이라면 라이더들은 어항 속 물고기인 셈이다. 복주머니의 플러스 숫자가 올라가면 결국 누군가는 그 떡밥을 문다. 그러면 알고리즘은 라이더가 반응한 복주머니의 플러스 숫자를 학습하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같은 +복주머니를 제시한다. 하지만 과연 그 ‘+복주머니’에 든 것이 진짜 복인지 독인지는 배달해 봐야만 알 수 있는 일이다. ‘+1,500원’을 선택한 결과가 라이더의 하루 수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날 그 시간의 배달 단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 그 알고리즘의 정체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더 많은 라이더들이 가격 경쟁에 내몰리고 플랫폼 기업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밀리의서재 책<별 다섯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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