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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독서노트(724) 맥도널드화

by 이야기캐는광부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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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서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낯익은 햄버거 프랜차이즈 체인점을 만난다면 심지어 반갑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 여행지가 외국이라면, 그리고 현지 언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심지어 현지 음식 문화에 대해 아무런 선지식도 없다면 프랜차이즈 식당은 단번에 고민을 해결해 준다. 동일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체인점의 햄버거는 뉴욕에서도 도쿄에서도 서울에서와 같은 맛을 제공한다. “뉴욕의 에그 맥머핀은 실제로 시카고나 로스앤젤레스의 에그 맥머핀과 똑같다. 마찬가지로 다음 주나 내년에 먹을 에그 맥머핀은 오늘 먹은
에그 맥머핀과 같을 것이다. 사람들은 맥도날드라면 의외의 제품을 제공받을 일이 없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9 맥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하는 예측 가능한 장소이다.
맥도날드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예측 가능성의 비밀은 표준화에 있다. 햄버거를 만드는 모든 요소들은 미리 계산되어 예측 가능하게 통제된다. 패티를 굽는 시간, 햄버거를 포장하는 방식은 사전에 미리 엄격하게 계산된 방식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요리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몇 시간의 교육만 받고 나면 햄버거를 만들 수 있다. 맥도날드화는 모든 것을 표준화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 밀리의 서재

 

맥도날드화는 진보처럼 보인다. 합리화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낡은 것들은 녹아내린다. 합리화의 비를 맞고 화려한 꽃들이 활짝 피기를 기대했지만, 합리화 그 이후 펼쳐지는 풍경은 모노톤이다. 도시의 장소감은 사라진다. 프랜차이즈 체인이 장악한 도시의 풍경은 서로가 서로를 복제한 듯 비슷해진다. 가맹점 옆 가맹점 또 그 옆의 가맹점이 연속으로 늘어선 풍경에선 삶의 다채로움이 빚어낸 지역 특색이 아니라 자본의 축적과 유동만을 읽어낼 수 있다. 프랜차이즈 체인망은 공간에 축적되어 있는 자본의 모세혈관 밀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이다.
모세혈관의 밀도가 높은 곳에선 합리화의 비가 자본의 체인에 의해 포섭당하지 못한 합리화 이전의 요소들을 완벽히 녹이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지가가 높은 구역에서 구멍가게는 찾아볼 수 없지만,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과 커피점 체인은 연속으로 들어서 있다.
세련된 국제 수준의 표준화된 간판과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포장지까지 화려해졌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의 합리화된 외양과는 달리, 그 체인망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고작해야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일 뿐이다. 합리화의 끝에서 만나는 어이없는 비합리성은 합리화된 대학도 피해갈 수 없다. 강의 평가로 강의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 높은 강의 평가 점수를 받기 위해 강의는 오히려 하향 평준화된다. 대학 경쟁력을 높인다고 영어강의 비중을 대학 평가의 지표로 사용하면, 대학들은
앞다투어 영어강의 비율을 확대한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강의실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학문 탐구라는 진지한 목적이 아니라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 영어로 강의를 듣는다는 만족감뿐이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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