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독서노트(726) 책은 냄새입니다

by 이야기캐는광부 2025. 5. 5.
반응형

책은 냄새입니다.
모든 책은 태생적으로 나무의 냄새를 지니고 있지요.
갓 구운 빵이나 금방 볶은 커피가 그렇듯이
막 인쇄된 책은 특유의 신선한 냄새로 당신을 유혹합니다.
좀 오래된 책이라면 숙성된 와인의 향기가 나지요.
포도알 같은 글자들이 발효되면서 내는 시간의 맛입니다.
 
책은 소리입니다.
책과 책 사이를 자박이며 걷는 조용한 발소리,
사락사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
그리고 연필이 종이의 살을 스치는 소리.
그 소리는 사과 깎는 소리를 닮았습니다.
당신은 사과 한 알을 천천히 베어 먹듯이
과즙과 육질을 음미하며 한 권의 책을 맛있게 먹습니다.
 
- 허은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p.6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김선영 - 밀리의 서재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 최은영, 『밝은 밤』, p.14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김선영 - 밀리의 서재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深冬)의 평화입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겨울의 연탄불은, (중략) (p.172)
 
봄은 내의와 달라서 옆사람도 따뜻이 품어줍니다. 저희들이 봄을 기다리는 까닭은 죄송하지 않고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p.148)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김선영 - 밀리의 서재

 

시는 물과 같아. 지구가 물을 품고 있지 않다면 숲이 존재할 수도 없고 땅이 단단하게 굳어 있을 수도 없고 바다를 유지할 수도 없겠지. 네가 시를 품고 있다면 네 몸 안에 푸른 행성 하나가 들어 있는 거지. 그 행성이 하나의 물방울일 수도 있고, 한 줄의 시일 수도 있고.”
 
- 림태주, 『그리움의 문장들』, p.171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김선영 - 밀리의 서재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