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은 단지 감정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의지와 의도를 가지고 특정 대상에게 자기 에너지를 ‘기꺼이 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내향형이든 외향형이든 모두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만, 에너지를 주는 방식과 선택하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내향인은 실제 타인과의 관계를 지속하거나 더 깊이 있게 확장하는 방식이 외향인과 다르다. 기본적으로 자기 안의 내면적 대상에게 친밀감을 잘 느끼는 특성은 내향인 특유의 ‘진득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낸다. 타인의 말이나 반응에 휘둘리기보다,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과 경험을 내면에 깊이 저장하고 되새기며 그 대상이 내면화된 형태로 자리 잡도록 한다(어지간한 음해와 소문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 ‘내면의 대상’은 이후에도 정서적 연결감과 친밀감의 근원이 된다. 다시 말해, 내향인은 관계 그 자체보다는 관계를 통해 얻는 정서적 흔적과 감응에 에너지를 기울이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외향인은 실제 인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즉각적이고 반복적인 교류 속에서 친밀감을 실현한다.
내향성과 외향성은 리비도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의 차이지, 누구는 관계를 잘 맺고 누구는 잘 맺지 못한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사회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 에너지의 방향성과 관계 맺는 방식의 구조적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4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내향인이 친밀함의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성유미 - 밀리의 서재
◇ 적절한 거리 두기의 시작
내향인은 종종 예리하거나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모든 것에 솔직히 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정답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난색을 표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곤란하거나 불편하다는 신호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상대방에게 경계선을 알리고, 자신을 과도하게 노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질문이 너무 어려울 때는 솔직히 “이건 제가 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라고 말한다. 답변을 유보하거나 “조금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시간을 벌어라. 자신이 느낀 어려움을 그대로 표현하며 상대방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좋다(예: “좋은 질문이지만, 제게는 꽤 고민스러운 주제네요”, “지금 꼭 답을 해야 할지요?”).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성유미 - 밀리의 서재
◇ 경계를 지키는 힘
내향인은 종종 타인의 무례함을 애써 참아 넘기거나, 불쾌함을 표현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곱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례한 질문에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은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불쾌함을 표현하는 것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무례한 질문으로 인해 초래된 감정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은, 내향인이 자신을 지키는 중요한 기술이다.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성유미 - 밀리의 서재
상대방의 질문을 무례하다고 느낀다면, 침묵이나 애매한 미소로 넘기지 말고 단호하게 의사를 표현하라(예: “그건 저에게는 개인적인 질문이라 조금 불편하네요”). 부드러운 어조를 유지하되, 분명히 경계를 설정한다(예: “그건 적절하지 않은 질문 같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나눌까요?”). 상대방의 태도가 계속될 경우, 대화를 종료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명확히 한다(예: “그 질문은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이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진짜 옷
어려움과 불쾌함을 표현하는 것은 무례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이 아니다. 내향인은 자칫 모든 상황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갈등을 피하려는 성향 때문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질문에 난색을 표하고, 무례한 질문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것은 내향인이 사회에서 입어야 할 중요한 ‘옷’이다. 이 옷은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고, 타인과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며,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관계를 이어 가는 기술이다. 적절한 거리와 표현은 내향인이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내향인의 ‘옷’을 완성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성유미 - 밀리의 서재
1. 적절한 거리 유지
자신이 느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부드럽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2. 연습과 준비
난색을 표하거나 불쾌함을 드러내는 것도 기술이다. 적절한 어휘와 어조를 연습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황에 따라 조율해 나가자.
3. 진정성 유지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외향형으로 태어난 사람도 내향형의 모습을 취할 수 있고, 내향형으로 태어난 사람도 앞서 본 경수 씨처럼 완전한 외향형으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다. 문제는 속이는 주체인 자기 자신이 속임수의 시작과 과정 자체를 다 자각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자기를 속이고 있지만 그 사실 자체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연 씨처럼 ‘그동안 알고 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나? 내 성향이 I인 것일까, E인 것일까?’라고 헷갈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성향이 바뀌거나 성격이 변하는 것은 꼭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요구 혹은 외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결정’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존재다. 우리는 매 순간, 삶의 중요한 가치들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정직할 것인지, 속일 것인지, 용기를 낼 것인지, 아니면 회피할 것인지. 이 모든 결정은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에는 의식적인 결정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따라온다.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성유미 - 밀리의 서재
프로이트가 제시한 ‘초자아Superego’ 개념은 이러한 내향성의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초자아란 사회적 규범, 도덕, 부모의 기대와 같은 외부의 목소리가 내면화되어 형성된 자아의 일부분이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통제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정신적 감시자 역할을 한다.
내향인의 심리 구조에서 초자아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면,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려는 압박감이 커진다. 이로 인해 자신의 헌신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심리적 소모’를 경험한다. 또한 생각이 깊고 타인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은 타인의 요구에 쉽게 이입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감정을 우선하게 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패턴이 형성되기 쉽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무의식적인 억압은 본래의 자기 욕망을 누르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 통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성유미 - 밀리의 서재
내향인은 안전감을 유지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감정적인 벽을 세우는 경향이 있다. 실질적인 마음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 방어기제로 작용하며, 때로는 외로움이나 오해를 불러온다. 내향인의 이러한 거리 두기 습성은 자기 관리와 자기 보호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감정적으로 소모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벽은 때로 인간관계에서 단절감을 느끼게 할 위험이 있다.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들>, 성유미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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