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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이야기&노하우/대학생활팁

20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best 5

by 이야기캐는광부 2010.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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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이 오지 않아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시>를 보았다. 이 영화속에서 내 가슴을 때린 장면이 있다. 문화원에서 시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각자 인생에서 아름다웠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사연은 저마다 다양했다. 누군가는 웃으며 또 누군가는 울며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했다. 그때 내 가슴속에서도 이런 질문이 솟구쳤다.

                ▲ 이창동 감독의 영화<시>속 한 장면. 각자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한다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일까?'

평소 한번도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어렸을 때를 떠올리자니 잘 기억이 나지 않고, 10대이후의 시간들속에서 찾아보려니 고민들로만 가득찼던 것 같다. 영화를 잠시 멈추고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아.......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라.....참 어려운 질문이자 한번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

그래도 한참동안 멍하니 있다보니,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하나,,,둘....떠오르는....그 느낌...아름다움. 우선 20대의 시간들 속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Best 5. 훈련소 20km 행군도중, 군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던 순간
다시 군대에 가고 싶진 않지만, 선명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20km 행군도중, 군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던 순간. 건빵봉지속 별사탕과 마스타를 먹으며 별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순간은 꿀같은 10분휴식시간이었다. 훈련소 동기들과 함께 대자로 누워 서로 말없이 별을 바라보았던 순간. 그 순간 각자의 머릿속에는 그리운 사람들과 시간들이 스쳐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땀에 젖은 전투복에 밤바람이 스며들고, 멀리서 반짝이는 별빛들이 이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시간들임을 깨달았던 순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대자로 누워 별을 바라보았던 때가 언제 또 있었나 싶다. 그저 젊음의 한 순간에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바라보았던, 무수한 밤하늘 별들이 아무 이유없이 가슴에 벅찼고....아름다웠다. 그때가 스물 두 살.

Best 4. 재수시절, 내 앞자리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던 친구들의 뒷모습
2004년 대학입시 3연패의 좌절을 겪고, 나홀로 흐느끼며 울었었다. 20대에 들어서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전주에 있는 재수학원에 등록하여 하루 하루 나자신과의 싸움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부는 잘되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어믄 책을 읽기도 했다. 모의고사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하루 하루 무기력해졌다. 결국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책을 세워놓고 딴 짓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어느 날이었다...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수학공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의 뒷모습에 시선이 머무르기 시작했다. 한명 한명 둘러보았는데 저마다 열심히 필기하며 공부하고있는 그 녀석들의 뒷모습이 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그당시에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느낌은 분명 '아름다움'이었다. 자신이 목표한 대학과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그 녀석들의 뒷모습이 참 멋지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의대에 가고 싶어 재수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김군,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군, 대학교를 다니다가 진로를 바꾸고 싶어 다시 수능을 보기로 결심한 누나...모두들 저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뛰고 있던 그들의 뒷모습. 왠지모르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뒷모습들이 아직도 잘 있는지 궁금하다.

Best 3. 스무살 첫 MT,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맥주 마시고 볼이 발그레졌을 때
그녀가 내 마음속에 들어왔던 건 대학교 1학년때였다. 훗날 그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마음으로나마 그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건 그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학교 입학후 동아리 하나쯤은 들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꼬드김에 들어갔던 동아리. 그곳에는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긴 생머리에 보라빛 옷이 참 잘어울렸던 그녀. 웃으면 볼에 보조개가 들어가고, 경상도 사투리가 참 매력적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첫 MT. 우리 동아리는 삼탄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곳으로 기차를 타고 떠났다. 낮에는 물놀이와 선배들이 준비한 게임을 하고, 드디어 밤. 술먹는 시간이 돌아왔다. 형누나들은 빙 둘러앉아 과자봉지와 맥주를 세팅하기 시작했고, 특히 형들은 자신들이 찍어 둔 신입생들 옆에 앉으려고 은밀히 음모(?)를 꾸몄다. 나와 친구들은 멀뚱멀뚱 어색하게 앉아 있었고, 그중에서도 나는 예전부터 좋아했던 그녀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화끈 거리는 얼굴을 애써 감추려 했다.

어느덧 분위기가 달아 오르고, 한참 잔이 도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순간, 맥주를 마시고 볼이 발그레 진 그녀를 보며 무지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참 예쁘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가슴이 콩닥콩닥 지 멋대로 뛰기 시작하는데, 들킬까봐 혼이 났다. 남들이 들을 때는 유치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발그레진 볼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추억속에만 살아 있지만.

Best 2. 640km 국토대장정을 하며 들렸던 초등학교 운동장과 그 곳 아이들 풍경
군제대후 처음으로 맞이한 대학교 여름방학,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푹푹 한 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국토대장정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정성들여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결과는 합격. 우리는 해남땅끝에서 남해를 보며 화이팅을 외친후, 640km 긴 대장정을 시작했다. 일주일 째에 접어 들었을 때, 발바닥의 물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둘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 국토대장정을 하며 찍은 눈부신 햇살속 나무한 그루.

그래도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걷고 또 걸었다. 땀에 쩔은 티셔츠를 입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그러면서 저마다  노란색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을 찾고 있었다. 국토대장정중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며 하룻밤을 묵기때문이다.

                         ▲ 저 멀리 노란색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이 보인다. 초등학교가 눈 앞이다!

초등학교에 들어선 순간 하루일과는 끝이 나고 텐트안에서 지친 몸을 쉬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린히 보후구역 표지판이 보이면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와~~~와~~~다왔다'

▲ 반갑다, 초등학교야!

드디어 초등학교 교문이 보이기 시작하면, 축구골대와 작은 운동장이 환하게 웃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초등학교 운동장과 아이들의 웃음, 이순신 동상 , 꽃밭, 교실너머 어렴풋이 보이는 칠판,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정말 아름다웠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뛰놀던 동심이 가슴속에 자라기 시작하고, 벌써 어른이 된 자신을 느끼며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풍경들이 참 눈부셨던 것 같다.

Best 1. 안타깝게도 20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쉽게 찾지 못하겠다. 분명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 사람들, 사건들, 사물들, 풍경들, 시간들속에 있을 테지만...아니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20대를 4년 남겨둔 지금, 어떤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지 아니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네가지 아름다운 순간들 중 하나가 베스트 1위가 될지 장담 못하겠다.

그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내가 취업을 잘해서 가족들이 서로 얼싸안고 좋아서 방방뛰는 모습이 순위안에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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