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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독서노트(755) 필연적 혼자의 시대

by 이야기캐는광부 2026.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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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 분석의 근거가되는 국내외 통계. 이 삼박자가 어우러진 좋은 책을 만났다. 내가 궁극적으로 배우고 싶은 책 형식을 갖췄다. 혼자의 시대를 분석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도 좋았고, 질문을 던지고 분석한 이야기를 알기쉽게 설명한 서술 방식도 좋았다. 어려운 내용을 이처럼 이해하기 쉽게 써내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이에 답하기 위해 나는 혼자 살면서 일하는 비혼 직장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지인의 지인을 소개받거나, 인터넷에 공고를 내 인터뷰 참여자를 모았더니 21명이 되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프리랜서부터 대기업 직원까지, 수입도 직종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들과 한 사람당 한 시간 반 넘게 인터뷰하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가족’이 차지하던 중심축을 자기 자신, 즉 ‘자아self’가 대신하게 된 현상 말이다. 이들에게 노동은 가족을 부양하는 활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활동이었고, 여가는 가족을 돌보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계발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재생산 메커니즘이 가족 중심에서 자기 중심으로 전환된 것이다. 나는 이를 자기생산-자기재생산 메커니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 밀리의 서재

 

『위험사회Risk Society』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졸업→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표준화된 삶이 가능했던 과거를 포드주의 체제Fordist regime로,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심해진 현재를 위험 체제risk regime로 정의한다.[ 4 ] 서연 씨는 “둘이 힘을 합쳐 잘살아 보자”는 것이 예전 세대의 마인드였다면, 이제는 “둘이 망하느니 혼자 망하는 게 낫다”는 것이 비혼자들의 마인드가 되었다며 위험사회의 세태를 짚어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 밀리의 서재

 

나이, 성별, 소득수준이 다양한 21명의 인터뷰 참여자 중 자기 성취나 보람이 아닌 생계 자체가 일을 하는 최우선의 목적이라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민아 씨 외에도 참여자들의 거의 압도적 다수가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대기업 부장인 42세 유희영 씨는 이런 성취감이 “재미”와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대표인 강진모 씨도 인터뷰 중 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신이 났다.
  일단은 뭔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게 재미있어요. 세일즈맨으로 일할 때는 뭔가 갖다 팔았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거죠. 그것 때문에 저한테 월급도 더 들어오고 이런 것도 좋지만, 내가 뭔가 성과를 만들어낸 거잖아요! (강진모, 중소기업 대표, 53세)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 밀리의 서재

 

물론 과거에도 사람들은 일을 통해 보람을 느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자부심이자 기쁨이었다. 그런데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일의 또 다른 핵심 목적으로 자아실현이 급부상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기준 삼아 행동한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는 이를 자기 준거 시스템self-referential system이라고 불렀다.[ 6 ]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충성하는 방식으로 신념 체계를 만들고,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개인 내면에서 설정한다. 과거에는 가족, 공동체, 종교 같은 외부의 준거점이 삶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자기 자신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 밀리의 서재

 

이는 한국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크리스털 윌킨슨Krystal Wilkinson과 그 동료들은 혼자 사는 직장인 36명을 대상으로 가정이 없는 이들에게 일·가정 양립work-family balance이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았다.[ 10 ] 연구진은 1인가구들은 양육과 돌봄 부담에서 자유롭기에 여가나 취미에 더 많은 시간을 쓸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들은 그 시간을 자기 일에 쏟아부었다. 일-가정 양립이 아니라 일-일 일체인 삶이다. 연구진은 일-가정의 양축에서 가정이 빠지면서 일이 싱글 직장인들의 유일한 닻primary anchor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 밀리의 서재

 

그렇다면 이 업계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식당을 운영하며 방송일을 병행하던 영상제작자 곽형준 씨를 인터뷰하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평균적으로 보면 직장 생활하면서 대리 달고 결혼하고 그러잖아요. 영상제작 쪽은 비율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쪽은 하루에 18시간, 20시간씩 촬영하거든요. 한 2시간 자다가 또 일어나서 출근하고 출장 가고 그러면 지금 잠자기도 바쁘고 밥 먹기도 바빠 죽겠는데 결혼 생각은 어렵죠. (곽형준, 영상제작자, 38세)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 밀리의 서재

 

육아휴직을 앞둔 동료의 업무를 떠맡고, 아이가 아파서 조퇴하는 동료 대신 잔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같은 여자라도 기혼 여성 동료에 대한 감정이 복잡해진다. 고위공무원으로 20년 넘게 일해온 혜수 씨는 주변사람들이 으레 가족이 있는 여성 동료들보다 “너는 좀 더 일을 해야 마땅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16년을 일해온 희영 씨 역시 싱글이라는 삶의 방식이 일터에서 기회이자 속박이 되는 상황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언제든 투입 가능한 인력이 바로 저 같은 싱글입니다. 육아휴직을 앞둔 동료에게는 중요한 일을 못 맡깁니다. 연속성이 없어지니까. 나중에 애가 아파서, 사고가 나서, 행사가 있어서 급하게 집에 가봐야 한다면, 그때도 그 일은 제 업무가 됩니다. “빨리 가봐,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솔직히 억울한 부분은 있어요. (유희영, 대기업 부장, 42세)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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