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들려주는 찡한 이야기
우리는 살면서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담긴 수 백개의 벽을 만난다.
예를 들어 고3때는 대학입시라는 벽을,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토익과 학점이라는 벽을, 졸업에 즈음해서는 취업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것 처럼 말이다. 또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면 현지에서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고, 누군가와 싸운 후에는 한동안 마음의 벽이 생기기도 한다.
▲ 우리는 삶 속에서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벽을 만난다.
그 뿐만 아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 만나는 실제 벽속에도 다양하고 때론 슬프기까지 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아무 말없이 서있는 듯한 벽들이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모두 제 각기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분단의 아픔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는 벽에서부터 가슴이 짠해지는 벽, 돈이 나오는 벽, 대학생들의 나눔이 담긴 벽, 신기한 벽 등에 이르기 까지 그 모습이 다채롭다. 어디 한번 그 벽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찾아 짧은 여행을 떠나보자.
#1. 분단의 아픔과 예술이 공존하고 있는 벽 -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은 올해로 붕괴된지 20년째를 맞이한다고 한다. 1989년 11월 9일에 붕괴된 이후, 지금까지 그 흔적의 일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베를린 시 프리드리히 거리에 가면 '베를린 장벽'을 주제로 한 벽 박물관이 있는데, 이 곳에는 그 당시 장벽의 사진과 벽을 넘어 탈출하려던 사람들의 사진, 각종 신문기사, 실제 장벽에 쓰인 벽돌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아직도 길거리에 남아있는 장벽에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그려져 있어 시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놓고 있다.
▲ 많은 작가들이 베를린 장벽에 그림을 그려, 분단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한편, 장벽에는 다음과 같은 웃지못할 이야기도 담겨 있다. 장벽이 붕괴되기 이전엔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기발한 방법들이 화제가 되곤 했다.
특별히 서독으로 통행할 수 있었던 자동차의 본네트에 숨은 사람의 이야기, 서독에 공연하러 가게된 동독의 한 뮤지션이 자신의 아내를 데려가기 위해 큰 스피커에 숨긴 사연, 간단한 비행장치를 이용해 날아사 장벽을 넘으려던 사람 등.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막힌 이야기들이 베를린 장벽속에 흐르고 있다.
참고 콘텐츠 : 베를린 장벽을 넘기 위한 온갖 방법들 (posted by genijoon)
#2. 가슴이 울컥해지는 벽 -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벽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벽속에서 쪽지가 발견되었다는 폴란드의 신문기사 하나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후벼 판다.
유대인, 폴란드 정치범, 전쟁 포로 등 400만의 목숨을 앗아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지난 4월 이 곳에 수감됐던 일곱명의 신상이 적힌 쪽지가 벽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1944년 9월 20일자로 연필로 쓰여진 이 쪽지에는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 수용소에 수감됐던 폴란드인 여섯명과 프랑스인 한명의 주소, 수용소 번호 등이 적혀있었다. 보수공사중이던 인부가 병속에 담겨진 채 콘크리트 벽속에 감춰져있던 것을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발견한 것이다.
처철한 학살의 현장속에서 그들의 주소와 수용소 번호만이 눈물자국처럼 찍혀 있었다. 벽속에는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고통스런 현장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고자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학살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유대인들을 실어 나른 철로, 고문실 등이 끔찍하게 남아 있다.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수감자들의 쪽지 혹은 편지가, 슬픔을 부등켜 안은 채 벽속에서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참고 콘텐츠 : 병속메세지와 수용소(posted by 길가메쉬)
#3. 돈이 나오는 벽? - 미국 어느 가정집의 벽
돈 문제로 친구, 친척, 이웃간에 금이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 4년 전 미국의 한 가정집에서도 이와 같은 씁쓸한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벽속에 숨겨져 있던 돈뭉치 때문이었다.
2006년 4월 미국 오하이오 주 한 주택 벽 속에서 돈뭉치가 발견되었다. 건축업자 밥 키츠가 리모델링 작업을 하던 주택의 욕실 벽에서 발견한 이 돈은 미국 대공황 시대의 지폐 182,000 달러(약 2억4천만 원)였다. 벽 내부 빈 공간에 매달려 있던 녹색 상자 속에서 지폐 뭉치를 발견한 밥은 자신의 학교 친구이자 집주인인 어맨더 리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거액의 돈을 발견한 기쁨도 잠시였다. 밥과 어맨더는 이 돈의 배분 문제를 놓고 한바탕 싸우게 되었고, 이들의 분쟁은 결국 법정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83년 된 이 저택의 이전 주인인 패트릭 던의 자손들마저 이 소식을 기사로 접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허나 이미 25,230달러(약 3천3백만 원)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나머지 돈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결국 그 돈뭉치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쟁은 2년 여 만에 법원의 중재로 종결되었다. 쿠가호야 재판소 찰스 브라운 판사는 남은 돈 25,230달러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밥 키츠의 권리를 인정하고, 나머지 86% 금액은 패트릭의 자손 21명이 나눠 갖도록 판결하였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에 벽속에서 돈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돈으로 인해 평소 친했던 사람들과 금이 간다면 과연 좋은 일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 콘텐츠 : 주택벽속에서 발견된, 대공황 시대 돈뭉치 (아이비타임즈 한미영 기자)
#4. 도굴을 막은 보디가드 벽 - 조선왕릉의 석실을 감쌌던 벽
보디가드 벽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어찌나 튼튼했던지 여러 차례 도굴을 막았던 보디가드 벽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여러 명의 도굴범들의 무릎을 꿇게 만든 그 벽은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조선왕릉의 석실을 감쌌던 벽이다.
▲ 조선왕릉 내부의 석실을 감쌌던 견고한 벽 덕분에 도굴의 위험을 막을 수 있었다.
중국을 근거로 활동하던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1868년(고종 5년) 충청도 덕산에 있는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다. 하지만 봉분 속의 단단한 벽을 뚫지 못해 도굴을 포기했다. 2006년 1월엔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에서 수직으로 파 내려간 구멍이 발견됐다. 그 당시 문화재청은 “조사 결과 도굴 갱은 지하 2.7m 까지파져 있었다. 그러나 단단한 벽에 막혀 더 이상 파지 못해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렇듯 조선 왕릉이나 왕족의 묘는 도굴범들에게 난공불락의 성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왕릉의 내부가 그만큼 견고한 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왕릉안에는 지하의 궁전이라 불리는 석실이 지어지는데, 그 석실 둘레를 1.2m 두께의 석회벽으로 감싼다고 한다. 석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해지기 때문에 외부의 침입을 막기가 수월하였던 것이다.
또 세조 이후에는 왕릉내부를 석회·황토·모래를 섞어 만든 회격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시멘트보다 단단하여 포클레인이나 굴착기로 부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렇듯 조선왕릉속 보디가드 벽은 왕릉속 부장품과 같은 문화재들을 지켜낸 일등공신이었던 것이다.
참고 콘텐츠 : 콘크리트보다 단단한 회격벽, '도굴막은 일등공신'(임현욱 기자)
#5. 소리가 울려 퍼지는 신기한 벽 - 북경의 메아리 벽
이번엔 신기한 벽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바로 중국 북경 천단공원에 있는 회음벽이다. 일명 '메아리 벽'이라고 부른다. 이 흥미로운 벽은 메아리의 이론과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것이다. 193.2m의 길이와 3.7m의 높이, 1m 두께로 된 둥근 형태의 벽이 천단공원을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 북경 천단공원에 자리한 황궁우(좌)의 모습과 메아리 벽(우)의 모습
벽에 대고 속삭이면, 벽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그 소리가 둥근 벽을 타고 전달 된다고 하니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끌기엔 안성맞춤이다. '자기야, 내 목소리 들려'라고 외치는 연인들의 풍경이 익숙하게 펼쳐진단다.
아무리 높은 벽일 지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벽이 이 세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 콘텐츠 : 북경 천단공원에서 본 중국의 아침 (posted by 루비)
이렇듯 곳곳의 벽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찡하면서 여러가지 교훈을 준다. 마지막으로 들려주고픈 대학생들의 나눔과 사랑이 담긴 벽 이야기 또한 우리에게 훈훈하게 다가온다.
#6. 대학생들의 나눔과 사랑이 담긴 벽 - 써니의 봉사프로그램 '담사랑'
그 나눔과 사랑이 담긴 벽이란 바로 SK텔레콤 대학생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담사랑'을 통해 탄생하는 멋진 벽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벽화를 그리는 봉사활동으로서 인천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대학생들이 직접 밋밋한 벽에 예쁜 그림을 그려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미대생부터 일반 봉사자까지 참여하여 신기한 요술을 부리듯 예쁜 그림들을 척척 그려낸다.
▲ 벽화를 그리는 봉사 '담사랑'. 그들의 마술이 올해 여름 인천 송도초등학교에서 펼쳐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나누면서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손길이 하나 하나 닿은 벽화에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길 것을 생각하면, 절로 뿌듯할 것 같다.
참고 콘텐츠 : 담사랑의 마지막 이야기 (posted by 박정민)
#7. 그 밖의 이야기...
벽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게 다가 아니다. 이밖에도, 2003년 쿠바 하바나에 있는 '장식 미술관'의 벽속에서는 다섯 점의 오래된 그림(18c 프랑스시대 작품으로 추정)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림이 발견된 박물관은 지난 1959년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 스페인 귀족의 주택이었던 곳으로, 이 귀족은 혁명이 일어나자 그림을 벽 속에 숨겨놓고 달아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단다.
또 가까운 동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낙서가 무수히 적힌 벽들을 발견하곤 한다. '영희♡철수'와 같은 장난기 어린 낙서뿐만 아니라, '00야 사랑한다'와 같은 닭살스러운 멘트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다.
이처럼 벽속에는 우리의 일상이 담겨 있기도 하며, 오래전의 역사 이야기가 묻혀 있기도 하다. 또 우리를 웃음짓게 만들기도 하며, 눈물짓게 만들기도 하는 삶의 희로애락이 흐르고 있기도 하다. 올 가을 그 벽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찾아나서보라. 무심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는 벽이지만, 벽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Posted by 김기욱(zepero@paran.com)
From 써니블로그 에디터그룹 스마일써니 http://blog.besun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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