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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이야기&노하우/대학생활팁

한국학생이 겪는 3대 위기, 3대 불행



나를 비롯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들의 가슴을 차지하는 것은 희망반 무기력증반이다. 꾸준히 열심히 하면 좋은 곳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자포자기하고 싶은 무기력증 사이에서 감정이 오락가락한다. 무기력증은 회의감, 피로감, 의욕저하의 형태로 나타나며, 우리들의 가슴을 들쑤셔 놓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런 무기력증의 원인이 그동안 취업을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할 수록, 그 우울한 느낌은 깊어진다. 


이런 감정의 곡선을 그리다가 만난 것이, 바로 이범 서울시 교육청 정책보좌관이 펼친 <한국 학생이 겪는 3대 위기>라는 강연이다.이 것은 <세상을 바꾸는 15분>이라는 미니 프리진테이션형 강연 중 하나이다. 다음 아고라에 접속하면 이 강연을 링크해 놓은 곳을 들어갈 수 있다.(http://agora.media.daum.net/cbs2011)

 
- 위 강연 영상은 보더라도 밑에 이어지는 글은 읽지 않아도 좋다.- 
 

그가 동기, 기술, 노력이라는 세가지 항목에 걸쳐 한국 학생들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말한 한국학생이 겪는 3대 위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범의 <한국 학생이 겪는 3대 위기> 강연 영상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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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를 왜 해야하는가에 대한)동기의 위기


한국학생들은
전세계에서 재미없는 공부를,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한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네 글자로 말할 수 있다.
'혼날까봐'

공부하는 동기를 찾지 못해 무기력증에 빠진 한국학생들이 많다.

우리나라에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공부하고 학력은 1,2위를 다툰는 것은 사실이다.
수학학력은 전세계에서 2등을 했다. 그런데 학력말고 한 가지 지표를 더 조사한 것이 있다.

바로 학업흥미도.
우리 나라 학생들은 학업흥미도측정에서는 49개국중에서 43등을 했다.



2. (공부하는)기술의 위기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어떤 계획을 세울 기회가 별로 없다.
이미 학원같은데서 정해놓은 학습계획을 따라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는 능력를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성취도를 높이는데 필요한 자기만의 공부기술을 익히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3.(자기에게 진정 필요한 공부를 하지 못하는) 노력의 위기

한국학생들은 공부를 많이 하긴 하는데 비효율적인 교육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한국의 교육은 성취도 위주가 아니라 진도를 빼는데 급급하고 있다.

학원주도학습보다 자기주도학습이 효과가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온다.
학원 주도학습은 이것이 필요한지 여부를 본인이 판단하지 않고, 남이 지레 짐작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자기주도학습은 어떤 공부가 자기에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되물어서 판단한다.
그래서 연구자들이 연구해보면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아이가 수능성적도 높게 나오고, 대학교에 가서도 성적이 좋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이 대부분 공부하는 방법은 학원주도학습니다.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를 뿐이고,
진정 자기에게 필요한 공부를 찾아서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안의 무기력증이 내탓만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시스템 탓도 있다는 사실에 위로아닌 위로를 받았다. 그렇지만 참 씁쓸했다. 이러한 3대 위기가 대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불행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하는 느낌이 들기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겪는 3가지 불행


1. (공부하는)동기의 불행
대학생들은  공부의 동기를 어디서 찾을까? 자신의 꿈에서 찾을까? 인생의 비젼에서 찾을까?
아마도 대부분 공부의 동기가 '취업'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이다. 공부의 동기가 '간절한 꿈'이 아닌 '간절한 취업'에 맞추어져 있다는 현실이.
대학교 때 역시 자신이 왜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쉽게 찾을 수 없다.


남학생의 경우 군대가기전에는 그래도 거창한 꿈을 꾸었다가, 제대후 훌쩍 지나버린 시간앞에서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가슴 한 쪽에는 꿈을 간직하고 있지만, '어느 곳이든 취업하자'라는 현실과 여러 번 타협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 대학생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나와 내 친구들이 공부하는 동기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에 맞춰져 있었다.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못하는 학생도 자의반 타의반 이러한 동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는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왔다. 과감히 학교를 자퇴하고 재수, 삼수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값비싼 등록금을 내며 울며 겨자먹기로 다니느 친구들도 있었다. 대학교는 생각보다 즐겁지 않은 곳이라고 한탄하는 학생들도 보았다. 꿈에 부풀어 들어온 대학교는 2학년, 3학년, 4학년이 될수록 현실에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물론 학교생활에 만족하는 친구들도 소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모두 청소년기때부터 이어져 온 지금 말한 '공부하는 동기의 불행'을 겪고 있었다.

내가 대체 16년동안 이 공부를 해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대학교에서도 여전히 왜 공부해야 하는지 진정한 해답을 찾지 못한채, 로봇처럼 교수님의 말씀을 필기하고 있다. 공부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기위해 열심히 공부해야돼'라는 고등학교때 수백번 들었던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2. (공부하는) 기술의 불행
앞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술을 깨우치지 못하는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학원이나 학교가 짜놓은 틀에 맞추어 공부하느라, 진정 자신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자기주도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대학교라고 다를까?
스스로 선택해서 들어온 대학이고, 이곳에서 우리는 스스로(?) 공부한다. 시간표도 자기 자신이 짜고, 수업에 꼭 들어가야한다는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대학생들이라고 해서 고등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때 겪는 똑같은 교과서에 등수를 가리는 '점수'라는 잣대가, 대학교에서는 똑같은 전공책과 A,B,CD로 나뉘는 '학점'이라는 잣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안에서 대학생들은 고등학교때만큼이나 좋은 학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자기주도학습이란 것이 의미가 있을까? 공부하는 기술이 늘었다고 한들, 그것이 단순히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무슨 소용일까? 그리고 대학생들이 학문의 즐거움,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닫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 그 학점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일렬로 줄지어 놓는다면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본 스펙을 쌓기에도 바쁜데, 자기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공부를 시간이 있기나 할 까?
기업에서 학점, 토익과 같은 기본 스펙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보다 다양한 입사전형을 실시하겠다고 하고 있는 판국에 말이다. 보다 다양한 입사전형을 준비하기 위해서 해야하는 공부의 양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생들은 공부하는 기술의 위기이자 불행을 겪고 있다.


3. (공부에 들인 시간과 )노력의 불행

20대가 되니 세상엔 생각보다 공부로 성공하는 사람만큼이나,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로 성공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현실은 어땠는가? 수백만명의 학생들이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교과서에 똑같은 지식을 주입받는 교육을 적어도 10년 이상동안 받아왔다. 학창시절 이것이 큰 문제라고 깨달아도 치기어린 반항이 될 뿐이었고, 선생님에게 매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한 반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하는 학생으로  나뉘었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다른 대안도 없이 그저 교실한쪽에 방치되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다른 분야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채, 성적만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꿈과 다양한 재능이 있는 그들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을, 엉뚱한 학교공부를 하는데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잘하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이들도 없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혼자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등수의 뒷자리를 차지했다. 지금 현재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고등학교시절 공부못했던 학생들의 가슴 아픈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개개인의 힘겨운 노력으로 좋은 대학, 공부잘하는 학생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주변을 돌 볼 여유가 없었다. 좋은 대학교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고자 하는 학교와 선생님들 역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돌 볼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 순간 선생님들은 위험한 착각에 빠졌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강제로 똑같은 공부를 시키면, '선생님으로서 스승으로서 직무유기가 아니다'라는 착각에 말이다. 물론 선생님들도 할 말은 있다. 선생님들 또한 한 반에서 선생님 1명이 수십명의 학생을 돌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했든 잘했든 결국 모든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느냐, 나쁜 대학에 들어갔느냐'라는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에 휘둘렸다. 공부를 잘했던 학생도, 공부를 못했던 학생들은 과연 노력한만큼 보상을 받았을까?

어찌 되었건,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못하는 학생도 대부분이 '대학교'라는 곳에 입학한다. 대학교에서도 고등학교때와 마찬가지로,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공부'라는 이상한(?) 것에 매달린다. 그리고 '좋은 대학교, 나쁜 대학교'가 아닌 '좋은 직장, 나쁜 직장'으로 학생들의 운명은 갈린다. 고등학교때 수백만 수천만의 학생들이 겪은 과정의 반복이요, 그때 겪은 단순한 잣대에 우리 대학생들은 또 다시 휘둘리고 만다. 이것은 그야말로 공부에 들인 노력에 비해 너무나도 불행한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어른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좋은 직장이 다가 아니다고 말해도,  대학생 당사자들은 혼자 가슴속으로 실패인지 성공인지 직감적으로 느낀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그래도 선빵했구나, 나쁜 직장(주관적이지만)에 들어가면 실패구나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슴 한 켠으로 밀려오는 허무감을 느낀다.
'공부하는 시간을, 내 진정한 꿈을 이루는데 썼었으면 어땠을까? 내 꿈을 위한 공부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단순한 취업이 아닌....'하고 말이다.

게다가 기업들이 어학연수, 학점, 토익과 같은 똑같은 스펙이 아닌 다양한 입사전형으로 인재를 선발한다고 할 때. 그 때 가슴에 밀려오는 허무함을 알까? 지금까지 똑같은 스펙을 준비해 왔는데, 취업하려니 다양한 입사전형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우리 대학생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것일까?

어떤 식으로든 대학생들이 공부에 들인 노력은 불행해 지고 있다. 


대학교 역시 고등학교때와 같은 주입식 교육의 현장이라는 불행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불행이 더 있다. 바로 대학교 교육환경이 주는 불행이다.

내가 볼 때는 놀랍게도 대학교육 역시 주입식이다. 충분히 재밌을 수 있는 학문 혹은 과목인데도 역시나 거의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많았다. 프린트 해 온 것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교수님은 줄줄 읽으시며 이론을 설명하시는 모습은 고등학교때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역시나 강의시간에 질문은 없고, 이를 아는지 교수님들도 질문을 거의 하시지 않는다. 질문을 하시더라도 거의 자신이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나는 벙어리처럼 침묵한채, 하품할 때만 입을 잠시 열었다가는 다시 닫는다. 그리고 볼펜만 자동로봇처럼 분주하게 움직인다. 눈은 반쯤 풀린채.




한편으로는 교수님들이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재미없는 것을(학생입장에서) 오랫동안 공부하셔서 교수의 자리에 오르실 수 있었을까하고 말이다. 
교수님들은 분명 학문과 공부의 재미를 발견하셨을테지만, 수업을 듣고 앉아있는 대학생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는 것 같기에 하는 이야기다.(4년동안 관찰했으니 꽤 신빙성 있다.)

그래서 항상 이런 아쉬움이 들었다. 분명 공부의 재미를 느끼셔서 교수님의 자리까지 오셨을 텐데, 왜 우리 학생들에게는 공부의 재미를 수업시간에 느끼게 해주시지 않는 것일 것일까? 학생들이 문제인가? 한국학생들은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유전자를 타고 난 것인가? 어쩌면 한국 학생, 선생님, 교수님 그리고 부모님들 모두 대한민국 교육의 피해자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대학교 강의실에서 하는 공부에 재미를 느끼는 대학생들은 정말로 존경할 만하다. 불행한(?) 상황속에서도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즐거움을 모든 대학생들이 누리지 못하는데에 있다. 중,고등학교때와 마찬가지로.

과연 불행은 이것이 끝일까?
물론 우리의 20대 청춘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20대의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또 대학생활이 신나고 재밌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20대 청춘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