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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이야기&노하우/대학생활팁

추석 고향에 내려가니 어머니의 미소는 늙어 있더라

by 이야기캐는광부 2011.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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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시입니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습니다. 몇 주전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저.
무거운 마음으로 내려간 고향. 그래도 고향땅을 밟으니 참 좋더군요.
여느때처럼 정읍역에서 내려, 부모님께서 17년동안 해오신 투영통닭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부모님을 만나기 100m 전. 50m 전. 30m 전. 10m 전.



3m 앞까지 왔을때였습니다.
여전히 짧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유리에 비추더군요. 
아버지의 흰 색 카니발이 저쪽에 바쳐있고요.

저희 통닭가게 앞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 한그루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저를 기다리시는 부모님.
죄송스러우면서도...
아니 ..참...죄송스러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얼굴을 돌리시며 미소를 지어 보이십니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이구, 우리 아들 왔어~!"
어머니와 저는 몇 초동안 서로를 꼬옥 안았습니다.

아버지와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냐?"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최대의 사랑표현이었습니다.
이 말 한마디 뒤에는 괄호를 치고 다음과 같은 문장이 숨겨져 있음을 저는 압니다.

"밥은 잘 챙겨먹고 있냐? (운동은 좀 하고 있냐? 졸업식은 잘 끝냈냐? 건강이 제일이다..
취업걱정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


어머니가 통닭 한 마리를 튀겨 주셨습니다.
17년동안 어머니께서 튀겨주신 통닭을 먹어왔기에
제 가슴 한 쪽은 늘 따뜻한 것 같습니다.

닭다리를 집어들고, 시원하게 한 입 뜯었습니다.
그런 저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어머니 얼굴을 보았습니다.
말없이 웃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어머니의 미소가 늙어 있었습니다.
주름이 잡히셨기때문일까요.
아니면 얼굴에 그늘이 져서일까요.
어머니의 힘없는 미소가 참 안쓰러워보였습니다.

아버지도 그저 말없이 미소짓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알게 모르게 그늘이 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미소도 이젠 참 많이 늙으셨습니다.
요새 많이 힘드신가 봅니다.

목을 반쯤 지나던 닭고기살이 울컥 메이더군요.
사람의 눈물샘은 식도에도 있는게 아닐까요...
저는 어머니의 애정가득하면서도 슬픈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시 통닭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닭이 이상하게 맛있더군요.

꾸역꾸역 닭다리, 닭날개, 날개죽지, 목, 가슴살을 넘겼습니다.
몇 개월만에 먹어보는 부모님 통닭인지 모릅니다.
부모님께서 튀겨주신 통닭은
배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에 손을 대면 늘 따뜻함이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집 거실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젊었을 적 결혼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과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멈춰있습니다.
그 옆에는 저희 누나와 매형의 결혼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몇 년 후면 그 옆에 제 결혼사진이 걸려있겠지요.

웨딩사진속 어머니 아버지의 미소는 참 밝고 행복해 보입니다.
하지만 30여년이 흐른 지금, 어머니와 아버지의 미소는....세월을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부모님께 20대의 풋풋한 미소를 되찾아 드려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열심히, 잘, 건강하게 살아야겠지요.

4일동안 고향에 머물고,
서대전으로 가는 KTX에 올라탔습니다.
가방에는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사과 여러 개와 반찬, 누나가 찔러준 용돈 조금이.
한 손에는 매형이 사주신 정장 한 벌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눈에는 ........
부모님 얼굴이 아른 거렸습니다.
대전에 와서 제 방에 들어왔을때 가슴이 참 허했습니다.
고향에 놓고 온 부모님 얼굴이 잡힐듯 잡히지 않을듯 가슴을 헤집었습니다.

새로 가게(감성주점 락코드)를 오픈한 매형과 누나. 항상 건강하고 화이팅하길 기원합니다.
더불어 부모님 가게인 투영통닭. 늘 건강한 맛으로 정읍시민들을 찾아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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