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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내가 꽂힌 단어는 많다. 사랑,행복,꿈,도전,기록. 그 중에서도 평생을 두고 사랑하고 싶은 단어는 '기록'이라는 단어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점점 '기록'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기록'은 그 멈추기 어렵다는 시간을 멈춰놓는다. 때로는 그 만들기 어렵다는 '타임머신'이 되어 주기도 한다. 과거의 내 모습과 생각들과 언제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기록해 놓은 모든 것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개인역사책이다. 나는 지난 시간을 돌아 볼 때,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지. 이런 일도 있었구나. 오! 이런 인연도 있었네.' 어디 도망가지 않고, 나의 20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블로그. 참으로 소중한 삶의 이력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서울대 중문과 허성도 교수님의 강연 녹취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은 기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기록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조선은 다 합쳐 500년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을 후손들에게 남겨주었다. 조선의 사관들은 왕의 곁에 항상 따라 붙어다니면서, 왕이 혼자 있을 때건 화장실에 갈때건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객관적인 역사 기술을 하기 위해 현재의 왕이 선대 왕의 실록을 볼 수 없게 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특히 세종대왕이 그렇게 태종의 실록을 보고 싶어했는데 이를 극구말린 신하들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허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보고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저러셨을까. 그러고보면 누군가의 기록을 아무때나 볼 수 있는 블로그의 매력은 새삼 말하지 않아도 크다. 블로그를 보는데 누가 제재하는 신하(?)도 없으니 좋다.
조선왕조실록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블로그 역시 개인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 예측해 본다. 수천개의 블로그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백년, 이백년, 천년이 지나면 그 가치는 더 커질 것 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수천 수만개 블로그중 몇 백개는 그런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 천년후의 20대 청춘들이 내 블로그에 기록된 20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우리는 시공을 초월해 친구가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2011/07/16 - [청춘,대학시절 통신] - 세계기록유산들을 살펴보며 깨달은 점
조선왕조실록은 500년동안 기록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 얻어낸 역사적인 쾌거이자 보물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그런 보물이 될만한 '기록물' 하나 정도는 남기고 떠났으면 좋겠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기록은 평범하지만 특별하고, 비록 유명인이 아닐지언정 후손들에게 남겨줄 가치가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특히 블로그에 기록된 삶의 희록애락들은 무수한 시간이 흘러도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과 소소한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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