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박경리 詩 '산다는 것'中에서-
여행의 묘미는 의외의 곳에서 만난 의외의 감동에 있습니다. 12월 31일에 찾은 통영의 박경리 기념관. 그곳에서 만난 위 글귀는 제 가슴을 잔잔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운데, 왜 젊은 날엔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한동안 멍해졌습니다.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순간, 너무나 짧고 아름다운 이 순간. 나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우는 경상남도 통영. 지난 2010년 내일로 여행을 하며 방문하고, 이번에 두번째로 오게 되었습니다. 늘 그대로 파도가 부드럽게 가슴에 안겨오고, 바다의 푸른 빛깔은 여전히 제 눈을 청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오지 못한 박경리 기념관에 드디어 설레임을 안고 도착했습니다.
기념관에 들어선 순간, 어딘가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 소설가 박경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몇 발자국 옮겨보니, 선생님의 젊은 날과 고령의 지긋하신 모습이 함께 눈에 들어오더군요.
작가 박경리 그녀가, 살아생전에 했던 말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작가시절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건강했다던 고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돈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 자신의 마음은 과연 건강한지 자문해보았지요.
'사랑'에 대한 글귀도 보입니다. 선생님 생의 흔적들이 문자로 살아 숨쉬어 가슴에 메아리 쳤습니다.
그녀의 일대기를 사진으로 만나보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젊은 날에서부터 노년까지 삶의 표정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가의 집필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소박한 책상위에 책들이 놓여있고, 노오란 방바닥이 따뜻한 햇살처럼 느껴졌습니다. 여러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과 고뇌를 어루만졌던 작가의 숨결이 살아숨쉬는듯 했습니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치열하게 문장을 다듬으며, '문학'이라는 물줄기를 사람들에게 흘려보내고 있었을 겁니다.
매순간 글을 쓰며, 문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관한 사색과 함께 말이지요.
그녀가 남긴 친필원고. 원고지위에 꾹꾹 눌러 담긴 글자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빛바랜 원고지도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다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관 곳곳에 박경리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사진 한장처럼 걸려있었습니다. 그녀의 생각들이 눈을 통해 가슴으로 들어왔습니다.
문학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창조라는 것은 무엇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작가란 무엇인지.
작가는 어디에서 비롯되고, 태어나는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기념관을 나와,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를 향해 발을 딛었습니다. 박경리기념관에서부터 추모공원 그리고 묘소까지 한꺼번에 자리잡은 이곳.
'박경리'라는 위대한 작가의 이름이 소박한 멋으로 다가오고,
묘소까지 가는 길이 한가롭고 정겨웠습니다.
도중에 열매의 빛깔이 마치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 붉었습니다.
드디어 친구 상연이와 창희와 함께 추모공원에 들어섰습니다.
아까 이 글의 처음에 펼쳐놓은 글귀를 만난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좀더 걸어 올라가니 벤치들이 통영 앞바다쪽으로 가슴을 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와 만났습니다. 큰 자연앞에 선 것처럼 경건해졌습니다.
'보고싶습니다'라고 적힌 바구니를 보고, 제 마음도 그와 같았습니다.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니, 통영앞바다가 아스라히 펼쳐졌습니다.
처음 통영에 왔을때는 들리지 못한 박경리 기념관.
이곳이 살면서 늘 가슴에 남는 여행지가 될 것 같습니다. 사진속 열매의 붉은 색처럼 선명하게 말이지요.
차에 올라타 다음 행선지로 향했습니다.
저 멀리 바다의 풍경에 감탄하며, 해안도로 따라 우리들의 청춘은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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