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는 살아있다
우리 역사속에서 친일의 잔재는 제대로 청산되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친일파들은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족과 국가를 배신했다. 그 증거가 정운현씨의 책<친일파는 살아있다>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친일파들은 해방이후에도 암세포처럼 나라 곳곳에 파고들어 민족의 정기를 거머리처럼 빨아 먹었다. 1945년 해방후 반민특위 등 친일파들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들은 시도되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국가 권력의 핵심층에는 친일의 전력이 있던 자들이 많이 있었고, 해방후 미군정역시 친일파들을 옹호하고 그들을 남한의 국가요직에 대거 기용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정운현씨의 책은 그동안의 무지를 일깨워주었으며,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어떻게 우리의 역사를 구정물처럼 흐려놓게 되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볼 때 친일문제에 대해서는 쉬쉬 하는 분위기었고, 입밖에 꺼내는 사람만 손해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친일파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용기있게 연구한 소수의 학자들이 있었다.
책에 따르면 그동안 친일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재야사학자 임종국이 <친일문학론>(1966년)을 펴내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친일문제에 대해 쉬쉬했던 사회속에서 임종국의 책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그동안 존경받던 문학작가들의 친일행적이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종국은 당시 도서관에 파묻혀서 각종 서적, 신문의 자료들을 면밀히 조사해서 각계각층 인물들의 친일행적들을 소상히 밝혀냈다. 이후 <일제침략과 친일파>, <친일논설선집>, <실록 친일파> 등의 저서를 펴내며 친일파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후학들의 꾸준한 연구와 더불어 ,<친일인명사전>이 지난 2009년 11월 8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행중 다행이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경찰의 습격으로 와해된지 60여년만에 비로서 친일인물들의 행정과 경력을 집대성한 책이 발간된 것이다. 이 인명사전에는 친일행위자 4,776명의 이름과 행적이 실려 있다. 친일을 했던 인물들을 들여다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이들중 일부는 친일행위를 한 전력이 있고,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중에도 친일행위를 했던 자들이 꽤 있었다. 정운현씨의 책은 그 4,776명중 많이 알려지고 대표적인 친일 인물들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창씨개명 1호 친일 승려 이동인, 조선총독도 반대한 현영섭의 '조선어 전폐론', 두 아들을 지원병과 학도병으로 팔아먹은 조병상, 민족대표 33인에서 변절한 3인, 국모 살해에 가담한 우범선, 친일세도가 윤보선, 한일병탄의 숨은 공로자 이인직 등의 사례가 그 예이다. 읽다보면 친일 행적들의 이야기가 부화를 치밀게 한다. 하도 열이 받아 책을 읽다말고 심호흡을 크게 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후손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으며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친일파는 살아있다>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만감히 교차하게 된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친일행적 연구의 명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될 친일파들의 행적들이 들어있는 책<친일파는 살아있다>. 일독을 권한다.
이 책과 함께 <인물현대사- 임종국편>을 한번 보는 것도 좋으리라.
참, 친일파의 정의에 대해 적으며 글을 마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는 친일파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친일파는 '1905년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민족에게 신체적,물리적,정신적으로 피해를 끼친자(조세열,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쟁점과 의의'에서 발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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