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어찌어찌하다가 수능을 세 번 보았던 내 청춘의 이야기다.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실패담 혹은 에피소드에 가깝다.
2003년 여름 자퇴를 하고 대입재수를 결심하니 나의 인생계획은 틀어졌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가려했던 군대를 1년 미루게 생겼다.
(사실 2년을 미루게 될 줄은 몰랐지만.ㅋㅋㅋㅋ이때는 삼수할 줄은 몰랐으므로.)
대학교 4개월을 다니다가 자퇴하고 재수를 했으니 '반수'라는 용어를 써야 맞다.
그런데 무슨 상관이랴.. 뭐..크게 보면 다 재수생이니. 쩝.
수능이 4개월 정도 밖에 안남았고 나의 신분은 이렇게 변해 있었다.
대학생도 고등학생도 아닌 재수생.
잉여인간의 탄생이었다.
대학생의 패기와 고등학생시절의 거창한 꿈은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그 때부터 '재수없다'라는 말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제길슨.
'재수좋다'라는 말은 절대 쓰지 않았다.
누나는 '재수없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내 눈치를 살폈다.
친구들이 툭 '재수없다,너' 하고 말해도 히히죽 거리며 웃었다.
슬프면서도 웃긴 상황이었다.
곳곳에서 대학교 개학소식이 들려왔다. 친구들은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나는 자퇴사실을 당분간 숨기고 친구들과 연락을 잘 하지 않았다. 패배자라도 된 것 마냥 씁쓸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어느 날 나를 부르시고는 한 마디 툭 던지셨다.
"너 후회할 걸..네 친구들보다 1~2년 늦는거야. 다른 친구들 군대갈 때 너는 학교 다니고, 친구들 대학졸업해서 취직할 때 너는 대학교 재학중이고. 이건 니가 감수해야돼.."
당시 스무살때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건 2년후 군대를 가게 되었을 때다.
군대에 있을 때 내 속마음은 이랬으니까..
'아 놔...나보다 어린 놈을 상병님,상병님 하고 불러야 된다니...'
어쨌건 자퇴후 대학생도 고등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
학원이라도 다녀야 했지만 재수학원도 안다니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사실은 많이 안했지만ㅜ,ㅡ)
대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언어영역, 수리영역, 사탐 등을 공부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아놔...괜히 자퇴했나...'
돌이킬 수 없었다.
수능때문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저녁에는 국민 드라마 <대장금>을 보느라 희희덕 거렸다.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들릴듯 말듯 이렇게 말하셨다.
뭐, 지나가는 소리로 하신 듯 했지만 내 귀에는 엄청 크게 들렸다.
그렇게 가시방석위에서 꿋꿋이 드라마 시청을 했다.
그 때는 몰랐다.
몇 개월후 대입 실패의 순간이 찾아올 줄은.
부모님은 미리 예견하셨는지도 몰랐다.
나만 몰랐을 수도 있다.^^;
그 때부터 대장금 OST 도 내 미래를 예언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아주 훅 가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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