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순의 책<미술관 옆 인문학>은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제목을 패러디한 듯한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끄는 책이다. 이 책은 그림 이야기 -> 그림을 통한 생각해볼 거리 발굴 ->인문고전과 연관지어 이야기 -> 인문학적인 성찰로 나아가는 보기드문 책이다. 그림에 대한 해석과 에피소드는 인문학적인 성찰을 위한 풍부한 재료가 된다.
1. 독자의 인문학적인 성찰을 도와주는 책
한 예로 저자는 고흐의 그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피사로의 그림 '몽마르트 거리 - 밤'을 통해 밤이라는 속성을 읽어낸다. 밤은 낮과 달리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는 시간이고, 어둠을 통해 나와 타인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만큼 자유의 공간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러한 밤의 속성을 역행해, 그 시간조차도 타인의 시선에 지배당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꼬집는다.
타인지향형 사회에서의 인간은 일정한 가치관을 갖지 않고 타인이나 세상의 흐름에 자기를 맞추어서 살아간다. 타인 지향형 인간에게 공통된 사항은 그들이 지향하는 근원이 동시대의 타인들이라는 점이다. 그 타인들이란 자기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친구나 매스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그 '타인'은 자기와 동년배의 사람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훨씬 윗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매스미디어가 매개하는 무명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현대의 인간들은 낮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온갖 문제에 접촉하게 된다. 그런데 저녁의 개인적 세계에서도 낮의 세계에서와 같은 동료 혹은 그 대용품으로서의 대중문화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갱 영화에 의하여 상징되는 그러한 고독감에의 공포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중문화는 현실 생활의 대용품이 되어 준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대중문화에 있어서는 그것은 단순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타인 지향형 인간은 고독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고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는 군중 속으로 섞여 든다.
- 48쪽, 저자가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에서 인용한 부분 -
이러한 현대인들의 풍경을 리스먼의 저서<고독한 군중>의 구절들을 인용하며 드러낸다. 이는 인문학적인 성찰을 향한 다리가 된다. 현대인들은 밤에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며 군중속에 있게 되는데, 밤만큼은 그러지말고 '내 안에 있는 타인을 쫒아 보내고 내 안에 나를 가득 채우자'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유화, 72.5×92cm, 1888)
2. '고독'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눈치가 빨라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타인으로부터의 시선이 자유롭고, 혼자 있게 되는 밤이라는 시간도 야근, 회식, 유흥 등을 통해 군중속에 있게 된다. 내 안에 있는 타인의 시선을 쫓아 보내고 나다워지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 군중속에서 '나'라는 자리에, '타인의 시선'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군중속에서도 한없이 고독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내 안에 '나다운 나'가 없고, 타인이 규정해 놓은 '나'가 있을 때 고독은 더욱 깊어지는 게 아닐까. 더불어 단순히 혼자라는 생각때문에 일어나는 고독보다는 내 안에 '참된 나(용기, 희망, 자신감 등을 가진)'가 없을 때 일어나는 고독이 더 큰 심리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을까. '혼자'라는 물리적 상황보다는, 고독한 그 '나'를 일으켜 세워줄 '나'라는 힘이 내 안에 없을 때의 심리적 상황이 한 개인을 더욱 큰 고독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해서 외로운 '나'에게, 내 안에 있는 '나'조차 다독거려주지 못하고 지탱해줄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할 때....그 때 그 '나'는 더욱 외로운 것이 아닐까.
고독이 두려워 군중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군중속에 있으면 그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고독을 내일로 미루는 게 아닐까. 군중속에서 한 개인의 고독은 잠시나마 위안과 안녕을 얻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고독이 어느 조용한 밤에 나 자신을 급습할 것이므로.
책<미술관 옆 인문학>은 이렇듯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생각이 옳은 방향으로 가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이 독자에게 선물해주는 것은 그 '생각하는 힘'이다. 이 책은 '고독'이 가지고 있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는 국어사전속 정의에만 내 생각이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3. 인상깊어서 밑줄 그은 문장들
코메디, 즉 희극이라는 말은 '코마이', 즉 '시골마을'이라는 말에서 비롯됩니다. 말하자면 희극이라는 것은 시골 마을에서 식사나 잔치 뒤에 벌어지는 흥겨운 여흥극인 셈이지요.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악하지는 않지만 천박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희극은 보통 사람들의 약점과 악덕을 보여 주어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달성합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훈적 가치가 있는 선의 힘으로 봅니다. 희극은 마치 거짓말을 하듯 비록 사물들을 존재하는 방식과 상이하게 표현하지만, 재치 있는 수수께끼와 예기치 못한 은유를 통해 그것들을 보다 자세하게 검토하게 하여, '아, 실상은 이런 것인데, 내가 몰랐구나'라고 말하게 합니다. 희극은 사람과 세상을 본래보다 혹은 우리가 믿는 바보다 나쁜 것으로, 어떤 경우든 서사시와 비극에서 보여 주었떤 성인聖人보다 열등한 사람을 묘사하여 진실에 도달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 68쪽, 저자가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인용한 부분 -
<동양과 서양의 자연에 대한 생각을 비교한 부분>
- 자연은 어울림의 대상 -
십 년을 살면서 초가삼간 지어 냈으니
나 한 간, 달 한 간, 맑은 바람 한 간을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곳이 없으니 이대로 둘러 두고 보리라.
- 103쪽, 저자가 인용한 송순의 시조 -
- 서양 자연은 정복의 대상-
내 눈은 멀리 넓은 바다에 끌렸다.
물결은 도처에 스며들어
자신이 비생산적이기 때문에 비생산적인 성질을 파급시키려고 한다.
물러나 버리면, 무엇 하나 이루어 놓은 일이 없는 그것이 나를 괴롭히고 절망시킨다!
여기에서 나는 싸우고 싶고, 이것을 정복하고 싶다.
저 거만한 바다를 해안에서 내쫓고 불모의 넓은 습지의 경계를 좁혀
파도를 저 먼 바다로 쫓아내는 그와 같은 굉장한 기쁨을 이루어 보겠다고 이 계획을 하나하나 연구해 보았다.
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위해서 토지를 개척하여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일하며 자유스럽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생활이든 자유든, 이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나날이 획득하는 자뿐이다.
- 105쪽, 저자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인용한 부분-
<추사 김정희가 그림 '세한도'의 발문에서 밝힌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사마천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친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께서 "일 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이 소나무와 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없는 소나무와 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 141쪽, 저자가 인용한 부분 -
4. 책에서 인용되는 인문고전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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