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했던 우리 조상들의 철학. 이러한 철학은 통도사, 화엄사, 부석사 등의 사찰을 비롯해 도산서원, 창덕궁, 종묘 등의 건축물에서 잘 드러난다. 유명한 사찰로 여행을 가면 왜 이렇게 감동을 받을까. 그 원인을 짚어보니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조상들의 마음씨에 감화되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흐름과 더함의 공간>은 건축가 안영배씨가 연구하고 기록한 우리나라 옛 건축물이 지닌 자연미와 공간미 그리고 그 조화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짤막한 지식이 부끄러워지고, 큰 의미를 지닌 건축물을 그동안 그저 흘겨서 봤다니 하는 큰 아쉬움이 들었다. 지난 해 겨울 부석사를 보고 와서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나와 달리 해박한 건축지식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들여다 보다니! 나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저자를 향한 존경심이 한꺼번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지난 해 부석사를 찾아가서 볼 때는 몰랐는데, 책을 통해 부석사의 공간이 중첩되는 9개의 층단구성으로 극락정토를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늦게 나마 학습할 수 있었다. 책<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속 부석사 이야기를 읽는 것이 부석사를 향한 깊은 애정을 키우게 한다면, 책<흐름과 더함의 공간>속 부석사 이야기를 읽는 것은 부석사에 대해 경건히 공부하게 만들고 만든 이들을 향한 존경심을 키우게 만들었다.
위 사진은 지난 해 겨울 내일로 여행을 하면서 담은 부석사의 모습이다. 사진속 건축물들의 지붕을 중심으로 보면 서로 다른 층단에 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갔을 때는 '언제 무량수전이 나오는 거야'하고 뾰루퉁한 표정으로 걸었는데, 저렇게 층단을 나눈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책내용을 빌리자면 이렇게 9개의 층단으로 나눈 이유를 학계에서는 다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단다. 첫번째가 정토신앙 근거설이다. 회전문(터)부터 무량수전의 기단까지 총 아홉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회전문-범종각-안양루라는 공간을 분절점으로 해서 각기 세 개씩 작은 단으로 구획되어 있다. 정토신앙 근거설은 이러한 3-3-3 구성이 <무량수경>에서 말하는 삼배구품설의 구조와 잘 부합된다는 생각에 나온 가설이다.
두번째는 화엄경 근거론이다. 일주문에서 무량전에 이르는 열 개의 석단이 화엄경에서 수행 위계를 나타내는 초지부터 제10지까지의 단계를 상징한다고 보는 가설이다. 부석사의 석단 수를 정토신앙 근거론에서는 아홉 개로 보고 있다면, 화엄경 근거론에서는 열 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부석사의 건축구조는 석단구성을 통해 극락세계에 이르는 수행위계와 연계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고 옛 사진을 다시 들춰보니 건축물이 지닌 의미가 더욱 깊게 느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처음 마주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무엇보다도 여행갔을 때는 보지못한 무량수전 내부에 대한 이야기가 반갑다. 겉에만 돌아보고 그 속은 왜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내 자신이 멍청하다. 하하.
무량수전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상징하는 금빛 소조불상이 자리잡고 있다. 책에 따르면 무량수전 내부의 평면구조는 정면 다섯칸(61.9)m ×측면 세 칸(38.2m)의 황금비율(약 5:8)로 이루어진 장방형 공간이고, 불단이 위치해 있는 서쪽 두 칸도 황금비율로 된 장방형 공간이라고 한다. 저자가 말하기를 '내부공간의 규모는 작아도 우리나라 불사건축에서 보기 드문 훌륭한 공간'이라고 칭하니, 볼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곳 3층석탑에서 바라보는 부석사의 조망을 보러 가고 싶었다. 지난 해 겨울에 갔을 때는 햇빛이 정면에서 비추어 조망을 제대로 담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책을 읽고나니 여행가방을 메고 얼른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부석사의 건축물과 그 공간들이 지닌 의미와 가치에 대해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밖에 통도사, 화엄사, 해인사, 불국사, 범어사, 봉정사, 도산서원, 부용지 정원, 종묘, 병산서원에 대한 풍부한 건축학적인 해석이 담겨있으니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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