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창훈이 쓰고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책<인생이 허기질 때 바라로 가라>. 물고기 비늘을 형상화한 책 겉표지가 인상적이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30여종이 넘는 어종에 관한 이야기가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다. 은빛 비늘 너머로 바닷물고기들이 간직한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은 이 기분! 갈치, 삼치, 모자반, 숭어, 문어를 거쳐 내가 평소 좋아하는 고등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무척 반가웠다. 어머니가 고등어조림을 내오실 때 푸른 등의 살점을 허겁지겁 발라먹던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자취를 해서 고등어를 먹을 날이 일년에 한 번 될까말까다. 그런 나의 아쉬움을 글이 달래주었다.
길이 두 자 정도로 몸이 둥글고 바늘이 매우 잘다. 등이 푸르고 무늬가 있다. 맛은 달콤하며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만들기는 하지만 회나 어포는 만들지 못한다. 흑산 바다에서는 6월에 낚시에 걸리기 시작하여 9월에 자취를 감춘다. 낮에는 유영속도가 빨라 잡기 어렵다. 성질이 밝은 곳을 좋아해서 밤에 불을 밝혀 잡는다.
- 정약전의 <자산어보>중에서-
작가는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인용하며 자신의 체험담에 풍부한 옛 이야기를 겻들인다. 자산어보는 1814년(순조 14)에 정약전(丁若銓)이 저술한 바닷물고기에 관한 책이다. 정약전은 귀양가 있던 흑산도 가까운 바다에 살고 있는 고기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지금 읽어봐도 세심한 관찰력이 놀랍다. 작가도 이에 뒤질세라 섬에서의 낚시 경험을 살려 맛깔나게 고등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고등어회를 먹은 경험에서부터 고등어를 낚시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말해준다. 또 고등어는 금방 죽기 때문에 얼음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과 고등어회 뜨는 법까지 미주알고주알 전해준다. 이쯤 되면 소설가라기보다는 횟집주인이거나 물고기 박사같은 포스를 철철 풍긴다.
그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자꾸 군침이 돌아 참을 수 없다. 간간이 들어가 있는 고등어회 사진과 묵은지를 넣어 만든 고등어찜 사진 앞에서는 그냥 사진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솟아난다. 고등어찜 사진만 손끝으로 어루만질 뿐! 이것은 전초전이다!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가 있다. 물고기와 관련된 이야기도 재밌지만, 그걸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다. 군침을 흘리며 읽지 않을 수 없다.
중간 중간 나오는 바다 사진도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붕장어, 거북손, 군소, 볼락과 같은 생소한 어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참 재밌다. 이런 것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야 만다. 게다가 흑산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인어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소설같기도 하고, 음식기행문 같은 이 책의 매력에 흠뻑 젖는다.
어종에 대한 이야기에 겻들어져 있는 뒷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섬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인생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바닷물고기에 관련된 지식을 쌓고, 음식 사진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사를 들으면서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생이 허기 질 때 바다로 가라'는 책제목처럼 바다로 한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책장에 놓아두고 인생이 허기질 때 한 번씩 꺼내보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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