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새벽, 책<삶으로부터의 혁명>(정지우, 이우정 공저)을 읽었다. 철학적인 사색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자기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처방전을 내리고 있는 책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와 타인의 관계, 자유주의와 호혜주의, 죽음에 관한 사유, 다양한 현대의 담론 등을 통해 우리네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모색한다.
정지우 작가의 지난 책 <청춘인문학>이 청춘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책은 '삶'이란 무대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다. 마이클센델, 제레미리프킨, 마르크스, 프로이트, 쇼펜하우어 등의 철학담론과 더불어, 다양한 영화속 등장인물을 동원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삶을 발견하고 지속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80쪽에 한 동안 머물며 청춘의 풍경들을 되짚어 보았다.
일반적 원인 |
주인 - 노예 자아 관계 |
|
잉여 | 현실의 모호성 | 주인자아의 미확립 |
냉소주의, 허무주의 | 하나의 절대적 현실 | 주인자아의 포기 (노예자아의 포기 동반) |
스펙 쌓기 강박 |
내면의 불안 | 주인자아의 잘못된 확립 (노예자아는 작동) |
잉여가 자기 현실을 얻고자 하나 흔들리고 실패하고(방황하거나 멍한 상태에 빠지고), 허무주의자가 자기 현실의 가능성에 냉소를 보내는 것과 달리, 스펙쌓기는 자아상과 현실상에 가장 잘 적응한 형태 같으면서도 가장 공허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온전한 자기현실의 확립 없는 맹목적 노력은 언제나 잘못된 방향으로, 즉 자기 삶의 진실한 만족과 자아의 온전한 확립이 실패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80쪽 -
내가 그동안 찾고 있던 거였다. 20대를 살면서 잉여는 왜 일어나는지, 가끔씩 냉소주의가 엄습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스펙을 쌓아도 불안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청춘이라면 한 번쯤 겪었거나 겪게 될 잉여, 냉소주의, 스펙 쌓기 강박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참 흥미로웠다. '이렇게 철학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구나.'고 생각하며, 역시 철학을 공부한 분들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위의 도표를 참고하면서, 그동안의 경험에 빗대어 저자의 생각을 살펴보게 되었다.
1. 잉여와 안개
원인 : 현실의 모호성=진로선택의 모호성+ 취업가능성의 모호성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뭘해야 될까? 이 길로 가야 되나?(진로선택의 모호성)'라는 생각과 '취업이 될까? 안될까?(취업가능성의 모호성)'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취업가능성의 모호성은 아무리 지원을 해도 서류합격이 되질 않을 때 많이 찾아온다. 가끔 학고스펙임에도 최종에서 떨어졌다는 취업수기를 읽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취업가능성의 모호성은 더욱 커진다. '고스펙 지원자도 저렇게 떨지는데 나는 과연 원하는 취업이 될까?'하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이러다 졸업을 하고, 계속되는 취업실패에 따른 냉소주의와 허무주의 상태의 직전까지 이르게 된다. 이곳저곳 원서를 쓰다가 계속 떨어지면 예외없이 '잉여'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잉여'는 '백수'라는 말과 남매지간이다. 잉여를 자연현상에 비유하자면 '안개'다. 뭔가 있을 것 같긴한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잉여가 되었을때 '아무 기업이나 가?, 눈을 좀 낮춰'라는 심리상태가 되면서, '묻지마 지원'이 더욱 많이 시작된다. 길은 보이지 않고, 한 숨 쉬는 날이 많다. 그러다 알바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해 간다. 잉여이긴해도 알바가 끝나면 실날같은 희망때문에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자기소개서를 쓴다. 희망은 있지만 앞날은 더욱 모호하다. 잉여의 원인속에 '현실의 모호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잉여의 원인엔 '취업문을 좁게 만드는 사회구조'와 한 개인이 열심히 준비하지 못한 탓'도 들어 있을 것이다.
2. 냉소주의 , 허무주의보다는 오기
원인 : 절대적인 현실, 취업난, 계속되는 서류, 면접 탈락 등
입사지원을 해도 불합격이 계속되면,'내가 왜 이러고 있나?'하는 자괴감과 더불어 '의욕상실'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그 전에 오기가 더 먼저 생긴다. 저자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라고 표현했으나, 사실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개인차가 있다고 본다. 누구는 오랫동안 빠져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금방 극복해낸다.
모든 청춘이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오기가 가장 많이 생길 때이기 때문이다. 이때 젖먹던 힘을 짜내 끝까지 자기소개서를 쓰며 지원해본다. '취업난'이라는 절대적인 현실에 맞서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취업난속에서 오기가 더 많이 생길테지만, 요즈음 청춘들이 냉소주의, 허무주의에 빠질 확률이 높은 건 부정할 수 없다.
3. 취업준비생들이 겪는 '스펙 쌓기 강박'
원인 : 내면의 불안
'내면의 불안'은 아마 거의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상태가 아닐까.
'내면의 불안'은 이런 생각들을 가져온다. '토익점수가 부족한 걸까, 자격증이 부족한 걸까, 스토리텔링이 부족한 걸까' 이런 내면의 불안은 스펙 쌓기 강박의 원인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 취업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끊임없이 자격증, 토익, 인턴경험 등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친구와 비슷한 스펙을 쌓지 않으면 불안하고, 나만의 스토리가 있어도 기본 스펙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불안하고. 이래도 불안하고 저래도 불안한 취업준비생들이다. 스펙쌓기의 강박은 내면의 불안이 원인이라는 지적은 정확하다.
우리 시대 청춘의 세 가지 문제적 모습이었던 잉여, 냉소와 허무, 스펙에의 강박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인자아의 모습을 반영한다. 잉여는 주인자아가 현실에 충실히 따르진 않으면서도 현실에 묶여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고, 냉소와 허무는 현실을 거부하려 하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좌절한 상황이고, 스펙에의 강박은 오직 현실이 전부라 믿으며 따르는 상황이다.
- 88쪽 -
80쪽 도표를 보며 잉여, 냉소주의, 허무주의, 스펙쌓기 강박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청춘의 풍경이 참 씁쓸했다. 저자의 분석은 날카로웠고 대부분 제대로 짚어냈다. 청춘의 풍경은 또 있다. 취업뽀개기와 멘탈붕괴가 그 주인공들이다. 크크.
4. 취업 뽀개기 or 멘탈붕괴
이처럼 잉여, 냉소주의, 허무주의, 스펙쌓기 강박 등을 겪다보면 드디어 최종합격 1승의 기회가 찾아온다. 취업준비생들사이에서는 '취뽀', 즉 '취업뽀개기'라는 표현으로 통한다. '취업'이 얼마나 원수같았으면 뽀개고 싶을까. 소중한 1승뒤에 찾아오는 것은 '환희'와 가족이나 친구들의 축하전화다. 그동안 겪었던 내면의 불안, 잉여의 시간, 스펙 쌓기 강박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많은 기업을 두드렸는데 취업이 안되면 '멘탈붕괴'가 찾아온다. 흔히 말하는 '멘붕'이다. 잉여, 냉소주의, 허무주의, 스펙쌓기 강박이라는 동굴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몇 날 몇 일이고 동굴에서 취업준비를 하면서, '잉여인간' 혹은 '백수'의 시간을 탈출해 '신입사원'이 되기까지 마늘을 먹어야 한다. 눈물겨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5. 삶으로부터의 혁명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부터 치열한 삶은 시작된다. 좋은 기업에 입사하던, 어떤 일이라도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던 또 다른 고민과 심리적인 갈등이 일어난다. 이 길이 맞나 고민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고민한다. 어쩔 수 없이 갇혀있는 현실에서 주도적인 나의 삶으로의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군가는 답을 찾고, 누군가는 답을 찾지 못한채 살아간다. 누군가는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제 2의 인생을 꿈꾸며 새로운 도전을 한다. 대부분이 현실에 자신을 맞추고, 성공을 위해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향해 달린다. 세상이 정해 놓은 성공과 실패라는 기준속에서 허우적댄다.
아마도 책<삶으로부터의 혁명>은 그런 갈등과 고민의 지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 1080억명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 중 정말로 후회 없이 한평생을 '잘 살고 간 이'는 얼마나 될까? 마찬가지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들 중 잘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러나 정말로 잘 사는 이는 얼마나 될까? 후회없이 살자는 모든 다짐, 고쳐먹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인생은 회환과 후회로 가득하다. 우리가 그저 시대에 휩쓸려 살다보면, 그 인생은 보람보다는 후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후회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정말로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
- 361쪽 -
저자가 던진 위 질문에 대해 해답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 책<삶으로부터의 혁명>에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청춘의 풍경을 분석해 보았다. 책을 읽고나서 무엇인가 뚜렷하게 머릿속에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동서고금의 철학담론으로 현대를 냉철하게 분석한 점이 돋보였다. 속독보다는 정독해야할 만큼 다소 어렵다. 그래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책속에 등장하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철학적인 조언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내 삶의 지도를 그려나가련다.
책을 선물해주신 이경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받은 책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225~233쪽의 쪽수가 순서에 맞지 않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책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호승의 책<어학연수사용설명서>, 재밌다! 꼼꼼하다! (170) | 2013.03.03 |
---|---|
권민 '자기다움', 아직 답을 얻진 못했지만.. (408) | 2013.02.08 |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아이콘>, 철학개념들을 공부하다 (2) | 2013.02.06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재미난 현대판 자산어보 (737) | 2013.02.04 |
[간단독서메모]'철학의 책'에 나오는 명언들 (1232) | 2013.02.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