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매복 사랑니를 뽑으러 대학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매복 사랑니는 똑바로 나지 않고 요염한 자태로 옆으로 누워서 난 사랑니다. 그러면서 앞 어금니에 기댄채로 잇몸속에 박혀 있다. 아니 쳐박혀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예약 후 한달이 걸려 찾아간 대학병원.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여느 때처럼 의자에 몸을 눕혔다.
그때는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저승사자 느낌이었지.
남자들의 환타지를 자극하는 간호사의 얼굴이고 몸매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뚝뚝한 의사가 마취 쥐사를 찍 넣으니. 살짝 따끔.
이후 몇초간 이상한 외계용어가 내 머리위를 돌아다닌다.
한 몇 분 기다린다.
그나마 이때가 공포를 좀 누그러트리고 심호흡을 크게 할때다.
드디어 마취약이 먹었을 때쯤 아까 그 무뚝뚝한 의사가 내 옆으로 온다.
의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 나는 모든 걸 내려놓는다.
입을 쩍 벌린다. 가랭이를 벌리듯. 혓바닥이며 목구멍이며 모든 걸 발가벗기는 치과 도구.
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이 난 녹색 손수건(?)이 얼굴에 슉 착륙.
이때부터 공포다.
이제부터는 청각으로 모든 상황을 상상한다.
"크게 벌려보세요."
"턱 당기고. 계속 벌리고 있어요."
"어허...많이 누웠네."
한 1분간 치과 도구로 깨작깨작 거리다가.
드디어 시작이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갈갈갈갈. 갈갈.
드르르륵.드륵.드륵.
알고보니 치아를 깨서 조각내는 중이다.
그 전에 잇몸을 메스로 찢는다.
물론 마취 상태라 감각은 없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갈갈갈갈. 갈갈.
드르르륵.드륵.드륵.
의사가 한 손으로 내 턱을 내리 누르고 뻰치로 조각난 치아를 하나씩 빼기 시작한다.
아따. 사람 살려.
그렇게 아픈 건 아니나 무섭다.
뺀치로 계속 당긴다. 썩을놈의 이빨아 얼른 빠져라.
외쳐보지만 의사는 뺀치로 계속 당긴다.
아따. 으메. 사람 살려.
입이 얼얼하고. 입술이 떨릴려고 그런다.
"네 뽑혔어요."
아이구0야.
아까 녹색 손수건이 거둬지고 드디어 밝은 빛이 보인다.
아이구야.
치과에 가면 가장 해방되는 순간은 바로.
"양치하세요."
이 말을 해줄 때다.
드디어 간호사가 입을 연다.
"양치하세요."
거즈를 물고 있어서 대답하기 힘들다.
고개만 까닥까닥.
일어나기도 힘들다.
얼음 주머니를 하나 건네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려준다.
술마시지 마세요.
침뱉지 마세요.
피는 삼키세요.
진통이 오면 밥먹고 드세요.
뺀 쪽으로 씹지 마세요.
그날 죽을 먹었다.
4년 후.
오른쪽 위 사랑니를 발치했다.
이녀석은 똑바로 나서 빼는데 10초도 안걸렸다.
뭐든 바르게 자라야 탈이 없다.
문제는 매복 사랑니가 왼쪽 아래에 하나 더 요염한 자태로 누워있다는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백마탄 왕자가 아니라 흰 가운을 입은 무뚝뚝한 치과의사가 뺀치를 들고 찾아와야 일어날듯.
벌떡.
벌써부터 꺽정시랍다.
아따. 징그랍다. 썩을놈의 사랑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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