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박범신의 소금, 밑줄 그은 문장들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중 밑줄 그은 부분이다. 


박범신 소금



"아버지는 등짐을 잔뜩 짊어진 것 같았다. 멀고 먼 풍진세상을 걸어온 듯 힘들고 외로워 보였다. 그렇게 그녀는 느꼈다. 아버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40쪽-


"화장기 없는 어머니의 얼굴조차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몸단장, 마음 단장, 놓치면 안 돼!" 어머니는 늘 말했다. 세상은 무너지는 사람을 붙잡아주지 않는다는 게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46쪽-


"아버지와 병원은 당연히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왜냐고 물으면 그녀들은 이구동성 대답했을것이었다.

아버지는 환자가 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라고 그녀들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아픈 아버지를 본 일도 없었다. 심지어 결근 한 번 한 적이 없는 게 아버지였다. 그랬던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녀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47~48쪽-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여전히, 어디선가 그렇게 걷고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날엔 낯선 산협 사이로 난 외줄기 벼랑 끝을, 또 어떤 날엔 가뭇없는 허공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꿈을 꾸기도 했다. 아버지 없는 자리는 나날이, 놀랄 만큼 확장되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쳐 무의식 속으로 침전되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하루가 다르게 복원되는 속도도 놀라웠다. 아버지는 수많은 해석의 길을 거느린 놀라운 텍스트였다. 그녀는 그것을 너무 뒤늦게 알았다."-52쪽-


"그녀들보다 어머니가 더 아버지를 몸종처럼 부린 적이 많다고 그녀들은 생각했다. "융통성이라곤 바늘귀 만큼도 없는 사람!"어머니의 말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아버지를 가리켜 '숙맥'이라고 처음 부른 것도 어머 니였고, 아버지가 결저애야 할 모든 권리를 혼자 독단적으로 행사한 것도 어머니였다. 아버지를 그림자 같은 존재로 만든 장본인이 어머니니, 설령 아버지가 없어진다해도 어머니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실종 후 어머니는 마치 폭풍 속의 허수아비처럼 단숨에 무너졌다. 대체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어디에 깃들어 있었던 것일까."-99~100쪽-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나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이 누구읹, 어떻게 살았는지 낯선 타인보다 오히려 멀다고 느꼈다. "엄마! 아빠!" 그녀는 속으로 불러보았다. 회환이 가슴을 쳤다. '엄마 아빠'라는 이름이야말로 사람으로서 당신들을 이해하는 길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엄마! 아빠'라는 말속엔,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중략)

"언니는 엄마 아빠가 누구라고 생각해?"

"누구? 그게 무슨 말이니. 그냥 엄마 아빠지."

"아냐. 선명우, 김혜란이야!"

-102쪽-


“아버지들 얘기야. 처자식이 딸리면 치사한 것도 견디고 필요에 따라 이념도 바꿔야지.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거든. 어느 날 애비가 부당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낚시질이나 하고 있어 봐. 이해하고 사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겠어? 강남권 초등학교에선 애들이 모여 앉아 제 애비가 죽으면 무엇 무엇을 물려받을지 셈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어. 효도가 비즈니스가 된 세상이야. 그러니 어떤 애비가 배롱나무처럼 살 수 있겠느냐고.”

-2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