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루, 집게, 펜치, 톱, 분무기, 수건, 가위…. 해부학 실습실에서 볼 수 있는 준비물이다. 써놓고 보니 오싹하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시신을 마주하면 무섭지 않을까. 책<해부하다 생긴 일>의 저자 정민석 교수는 관련 에피소드를 만화로 표현했다.
촌철살인.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무서워요. 이유는 산 사람은 나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 무릎 탁. 공감 꾹. 정민석 교수의 만화는 재치와 재미가 있다. 그의 유머 코드가 처음엔 무척 낯설었다. 어려운 해부학 용어가 섞여있어서 그랬나보다. 하지만 곧 적응됐다. 4컷의 만화에 해부학 지식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려고 고심한 흔적들이 녹아있다.
그는 왜 해부학 만화를 그렸을까?
이렇게 깊은 뜻이! 정민석 교수는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 25일 라푸마둔산점에서 열린 독서모임 산책에서 정민석 교수의 <해부하다 생긴 일>을 함께 읽었기 때문이다. 이날 독서모임 산책 회원들은 해부학의 속살을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일반인이 의과대학의 속내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물론 독서모임을 하다가 혀가 얼어 붙기도 했다. 난생 처음 만난 해부학. 각자의 생각을 말하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해부학 용어들이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독서모임에서 거의 처음 다룬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누구도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찰나. 기자시절 시체 부검을 하는 현장을 방문한적 있다는 분이 말문을 열었다. 인체해부전시회를 가서 직접 찍은 사진도 직접 보여주셨다. 징그러우면서 신비로웠다.
"의대생들이 시체해부를 하고 있으면 옆에서 참관하는 정도였어요. 간호학과 학생들은 그런 경험을 갖고 있죠."
간호사를 한 적이 있는 분의 경험담에도 귀를 쫑긋.
"저자가 해부학이라는 분야를 재밌게 알리려고 만화를 그린 것은 대단한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의 의의가 거기에 있습니다.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분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정민석 교수의 책은 해부학을 간접경험 하도록 도와준다. 책을 통해서라도 해부학과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
정민석 교수는 시체를 앞에 두고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이처럼 죽음을 보면 삶이 아름답고 값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살아 있을 때 자기 몸과 남의 몸을 값지게 다루십시오. 더 값진 것이 있겠습니까?"
-책 12쪽-
해부학 만화 말풍선에 있는 구절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살아있을 때 자기 마음과 남의 마음을 값지게 다루십시오. 더 값진 것이 있겠습니까? 교수님을 따라해봤다.
이날 독서모임 회원들은 책<해부하다 생긴 일>의 아쉬운 점도 이야기했다.
'만화의 글씨가 작아서 눈이 아팠다.'
'글의 중간 중간 들어간 만화가 글의 내용과 중복되는 점이 아쉬웠다.'
'결코 쉬운 만화가 아니었다. 뒤에 있는 '해랑이와 말랑이의 몸 이야기'를 책의 앞부분에 배치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
'저자를 직접 모시고 강연을 들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독서모임이 끝나고 정민석 교수님의 담벼락에 모임 사진을 올렸다. 교수님이 답글을 달아주셨다. 감사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였을 줄 몰랐습니다. 저는 많이 감격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책 분야라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 버퍼링이 좀 있었다. 그래도 해부학이라는 신세계를 탐험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책<해부하다 생긴 일>이 건빵이라면, 이 책의 뒷편에 있는 '해랑이와 말랑이의 몸 이야기' 만화는 별사탕이다. 해부학과 몸의 신비를 재밌게 접하고자 하는 분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이날 참석해주신 독서모임 회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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