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여객기에는 자동항법장치가 있어서 조종사가 일일이 비행 항로를 잡고 방향을 수동 조작하는 등의 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장치에 이상이라도 발생하지 않는 한 비행기는 미리 입력된 항로 정보에 다라 목적지까지 잘도 날아간다. 그러나 기계와 달리, 인간에게는 그런 자동항법장치가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갈가, 무엇을 할까, 어떻게 살까 매 순간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어떤 선택과 결정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모든 판단과 선택에는 숙명처럼 불확실성이 다라붙고 우리의 모든 결정에는 늘 불안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201쪽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원광대학보, 2012,11,8)-
일본의 한 소설가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때문에 자살했다고 한다. 내 안에도 막막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아침해가 떠오른다 한들 그 어둠을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음에 그늘을 안고 산다. 쓸데없는 걱정부터 당장 일자리에 대한 걱정들까지. 우리를 옭아매는 불확실성, 결정장애, 보이지 않는 미래.
그러나 잠깐. 아주 잠깐. 퇴근 시간이 가까워올 때 엉덩이에 개구리 뒷다리가 생겨나는 듯 하다. 폴짝폴짝. 마음이 폴짝폴짝 자취방으로 뛰어간다. 그럴 때는 마음의 불안도, 걱정도, 불확실성도 잠시나마 걷힌다. 우리는 매일 살아야하는게 아니라 매순간 퇴근해야하는지도 모른다. 퇴근할 때 잠시나마 머릿속이 단순해진다. 집에 갈 생각으로. 침대에 덜렁 누울 생각으로.
도정일 산문집<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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