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을 읽었다. 사실 작가의 작품중에서 <삼포가는 길>과 <장길산>이 익숙하다. 삼포가는길은 고등학교때 문학시간에 배웠다. 시험에 자주 출제됐지. 대하소설<장길산>은 방에 틀어박혀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에 내 책가방속에는 교과서가 없었다. 이상한(?) 주제의 책들과 소설 몇 권이 담겨있었다. 맨 뒷자리에 앉아 몰래 책을 읽곤했다. 학교 수업이 너무 재미없어서였다. 책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한 번은 고등학교시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무단결근. 대신 우리집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우산을 펴고 그 안에 쪼그려 앉았다. 가끔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의 색깔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마음이 답답해서 옥상으로 갔던 것 같다. 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개밥바라기별>에 그런 내 모습이 왠지 아련하게 떠오르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그렇지만 혼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고 나니까 자기 시간을 스스로 운행할 수가 있었지요. 가령, 책을 읽었어요. 그 내용과 나의 느낌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정리가 되어서 저녁녘에 책장을 닫을 때쯤에는 갖가지 신선한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또 어떤 날에는 어려서 멱감으러 다니던 여의도의 빈 풀밭에 나가 거닐었지요. 강아지풀, 부들, 갈대, 나리꽃, 제비꽃, 자운영, 얼레지 같은 풀꽃들이며, 논두렁 밭두렁의 메꽃 무리와, 풀숲에 기적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주황색 원추리 한 송이, 그리고 작은 시냇물 속의 자갈 사이로 헤집고 다니는 생생한 송사리떼를 보고 눈물이 날 뻔 했거든요. 눈썹을 건드리는 바람결의 잔잔한 느낌과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구름의 행렬, 햇빛이 지상에 내려앉는 여러가지 색과 밀도며 빛과 그늘. 그러한 시간은 학교에서 오전 오후 수업 여섯 시간을 앉아 있던 때보다 내 삶을 더욱 충족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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