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좀 더 크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 질문. 우리는 왜 죽는 것일까.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왜 죽는 것일까. 왜 우리는 사라지는가. 왜 태어났는가. 그런데 발이 커지고, 손이 커지고, 머리가 커졌어도 그에 대한 질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그런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권정생의 소설<몽실언니>에서 몽실이는 그런 생각을 좀 더 일찍한다. 전쟁 난리통에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삶의 그림자를 일찍 들여다본다.
먹먹하다. 가슴 아프다. 울적울적하다. 그립다. 쓸쓸하다. 보고싶다. 애잔하다. 슬프다. 온갖 감정들이 북받쳐 오르는 소설<몽실언니>. 몽실이는 난남이 뿐만 아니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생을 등에 짊어졌다. 그런 와중에 다리 한쪽을 쩔둑거리며 걸어간다. 엄마를 찾아가고, 고향을 찾아간다. 혼자 너무나 큰 슬픔과 삶이라는 무게를 감당하는 몽실이. 몽실이의 축쳐진 뒷모습과 밟은 웃음이 겹쳐보이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돈다. 비록 1950년대 전쟁과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지만, 나는 <몽실언니>를 읽으며 우리보다 앞 선 세대 어르신들의 고난과 슬픔의 세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손가락으로 잡고 있었을 때, 책장을 넘기려할 때, 마치 몽실이의 조그마한 손을 잡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쉬이 소설을 닫을 수 없었다. 마지막 장을 놓을 수 없었다. 몽실이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밤마다 앞마당에 거적을 깔고 혼자 누워 몽실은 별을 세면서 울었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댓골 엄마를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었다.
-51쪽-
'최 선생님은 누구나 자기의 길은 자기가 알아서 걸어가라했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 길을 내가 알아서 걸어간다는 게 무어가 무언지 모르겠구나. 좀 더 크면 알게될끼? 그때까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72쪽-
"몽실아, 사람은 일부러 그러지 않는데도 남을 속이고 해치며 서로 그렇게 살아야 하나 보지. 내가 몽실이한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뭐여요?"
"몽실이 자주 울 때가 많은데 이젠 울지 말고 참도록 해요. 나도 많이 울었지. 눈물이 마르지 않을 만큼 매일 울었으니까 어떠했겠니? 그러나 그게 부질없었어. 그렇게 울지 말고 입술을 깨물었으면 난 좀 더 건강할 수도 있었을거야. 우는 건 참 못난 짓이야."
몽실은 얼굴이 붉어질 만큼 가슴이 뛰었다. 걸핏하면 울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어머니, 이젠 울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입술을 깨물어요. 저하고 함께 열심히 살아요. 절대 울지 않고 어머니를 돕겠어요."
-81~82쪽-
몽실은 난남이를 안고 비탈길을 올라갔다.
'사람은 왜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몽실은 싸움터에 간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인민군들의 세상이 되어 버린 마을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댓골 엄마는, 그리고 영득이는?'
몽실은 난남이를 들여다봤다.
"난남아, 인민군이 따나거든 우리 둘이 고모한테 가자."
어디서 대포 소리가 쿵쿵 울려 왔다.
-96쪽-
"너, 이름이 뭐냐?"
청년이 물었다.
"몽실이여요."
"몽실이! 이쁜 이름이구나."
"얜 난남이여요."
"난남이?"
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나, 시간 있으면 이담에 올게. 지금은 가 봐야 한단다"
청년은 몽실이의 가슴에 안긴 난남이의 조그만 손을 꼭 쥐었다가는 놓고 황급히 달려나갔다. 몽실은 왠지 갑자기 외로움이 가슴 안으로 몰려왔다. 인민군 청년이 잠깐 동안 남기고 간 사람의 정이 몽실을 외롭게 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느꼈을 때 만이 외로움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든 부모님이든 형제이든 낯모르는 사람이든, 사람끼리만 통하는 따뜻한 정을 받았을 땐 더 큰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101~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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