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들어오는 음식을 좀 더 깊게 느끼고 싶었다. 그 느낌의 흔적들이다."
알쓸신잡을 보다가 문득 황교익의 <미각의 제국>을 꺼내들었다. 책 앞 날개에 적힌 그의 프로필 내용이 인상깊다. 무언가를 먹었던 순간들을 끄집어내 자기소개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에 대해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김치찌개와 설렁탕.
우선 김치찌개를 살펴보자. 밥 해먹기에 대한 귀차니즘이 없던 시절, 김치찌개를 끓여먹었다. 한 번 끓이면 삼시세끼는 문제없었다. 다른 반찬을 내올 필요 없이, 김치찌개 안에 담긴 김치와 돼지고기를 건져먹으면 됐기 때문이다. 빠알간 국물 사이로 보이는 돼지고기들. 젓가락으로 푹 담가 이 녀석들을 건져올려 입안으로 가져가는 순간. 우물우물 씹으며 목젖 너머로 넘기는 순간.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외투를 입혀주듯이 돼지고기에 김치를 건져 둘둘 말아 같이 먹으면? 그 맛도 참 좋다.
김치찌개
배추김치를 넣고 끓인 찌개이다. 대한민국 사람 아무나 잡고 물으면 김치찌개는 다들 잘 끓인다고 한다. 조리하기 간단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맹물에다 숭숭 썬 김치, 부재료로 돼지고기, 고등어, 꽁치, 참치, 어묵, 햄, 소시지 중 적당히 골라 넣고 마늘이나 파, 풋고추, 두부 등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맛을 좀 더 깊게 하려면 맹물 대신 육수를 쓰면 된다.
-책 58쪽-
자취하며 수십번 김치찌개를 끓여봤으나 엄마표 김치찌개 맛이 안난다. 만만히 봐서는 안될 음식이 바로 김치찌개가 아닐까.
설렁탕
설렁탕에 나오는 국수는 없애야 한다. 국수의 밀가루 냄새로 국물맛이 다치기 때문이다. 설렁탕에 국수가 들어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흔해지면서부터이다. 못 먹고 살 때 양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지 맛을 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꼭 국수를 말아 먹겠다면 주방에서부터 탕에 넣지 말고 따로 내는 것이 맞다.
-84쪽-
개인적으로 설렁탕에 국수를 넣어도 맛있긴 하다. 국수가 없으면 더 맛있을랑가. 깍두기 국물을 설렁탕에 부으면 더 맛있다. 때로는 김칫국물을 넣어도 맛있다. 매번 그렇게 먹는다. 하얀 국물을 숟가락에 올릴 때 보름달을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진다. 이 또한 설렁탕의 매력이다.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 뿐이다. 자기만의 소소한 레시피로 맛있게 먹으면 금상첨화.
그나저나 '배고픔'이야말로 그 어떤 묵은지나 조미료(?)보다도 음식을 맛있게 하는 마법의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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