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범신은 '자기안의 시인'을 깨우며 살라고 말한다. 자기안의 시인을 억압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소설가인 당신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자신의 시가 시인이 볼 때는 아마추어로 보일거라고. 그럼에도 가끔 시를 쓴다고.
18일 금강길 걷기(충남문화재단 개최) 논산 종주 프로그램 중 박범신 인문학콘서트가 진행됐다. 종주팀들과 탑정호와 솔바람길을 거닐은 작가는 자신의 집필관에서 시를 직접 낭독했다. 작가가 쓴 시, '밀물'과 '사는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밀물'은 나 자신을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목표를 이루고자 조바심을 내고 있는, 그러나 뒤쳐져 있는 듯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봄꽃으로 피려고 서두르는 건 아닌지, 봄꽃으로 피지 못한다고해서 너무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해지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비춰봤다. 그러던 중 '겨울에 피는 꽃도 있는 걸'이란 시구는 위로의 손길이었다.
'사는거'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시였다. 늙어서 가시를 쟁이고 살아야한다면, 만에 하나 그 가시가 스스로를 찔러 상처를 낸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먼 훗날 나의 머리색이 희끗희끗해질 때, 지금 가진 궁금증에 대한 답은 오히려 선명해질까.
또 한 편의 시<머웃잎 따며>. 아내가 삭신이 쑤신 와중에도 자식들에게 주려고 머웃잎을 따는 모습을 보며 써내려갔다는 시. 굳이 해석하려하지 않아도 마음에 먼저 닿는 시구가 있었다.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하기전 마음에서 먼저 느끼는 구절이었다. '아침 내내 당신이 거두어온 머웃잎 / 잎사귀에 묻은 흙고물 털면서, / 사는 건 다만 존재의 / 실뿌리-잎사귀에 흙고물 묻혀와 다지고 털고 씻어 내는 일'.
밀물 - 박범신
봄 꽃의 밀물 황홀하네
저 밀물에 섞이지 못한
당신, 혹 쓸쓸하신가
상심할 거 없어
여름꽃 가을꽃도 있고
겨울에 피는 꽃도 있는 걸
당신은 겨울꽃 눈 내리는
절세의 어느 모퉁이에서
고고하게 홀로 피고말거야
그게 당신 스타일.
사는 거 - 박범신
사는 거
나이 든다는 거
제 몸 속에 남몰래
가시를 쟁이는 일이지.
비오는 날 홀로 고개 들면
더러 그 가시들이 생살 뚫고 나와
물에 젖는 걸 본다네
에푸수수한 경계의 모서리들
창 너머 백일홍 저리 무심한 표정인데
꽃초롱 불 밝은 안뜰에 앉아
그렇고 말고 사랑은
가시를 쟁여 쪼코렛복근 만드는 일
지운 편지함에 그리운 당신
백골 흰빛으로 누워있는 걸 보는 일
오늘도 나직나직 빗소리에 젖어
앉은자리 여기 그대로
내가 당신의 풍경이 되면 되는 거지.
머웃잎 따며 -박범신
비온다 어린아이 잇속 같은 봄비
싱싱한 몸 차곡차곡 맞댄 머웃잎들
빗속으로 떠나보내고
터미널 건너편 속편한내과 젊은 의사 앞에서
스쳐가는 가로를 내다보며 당신은
점심으로 싸간 식은 고구마 껍질을 벗긴다
늙은 어미는 먹이는 재미가 젤이라면서,
빗속에서 뜯고 다듬어 챙긴 머웃잎들이
당신의 한결같은 힘이다
틀어진 허리와 삭은 관절마다
한 생애가 아프게 저물고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당신
굽은 나의 어깨 위에 오늘은
젖은 당신의 머리칼 안아 누이고 싶다
고맙다고, 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환히 웃던 순간순간에도
나를 위한 당신의 반쪽 어깨는
언제나 비에 젖고 있었다는 걸
이제 안다고 말하면서,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말하면서,
아침 내내 당신이 거두어온 머웃잎
잎사귀에 묻은 흙고물 털면서,
사는 건 다만 존재의
실뿌리-잎사귀에 흙고물 묻혀와
다지고 털고 씻어 내는 일
한 사랑이 그것으로 기울면
한 사랑이 그것으로 또 솟아난다고,
그러니 우리 잘 살아왔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짐짓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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