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가르치지 않는 한국사회. 세속적인 성공의 틀에 갇힌 우리들의 자화상. 다른 삶을 살지 못하고, 주변의 누군가가,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삶의 궤도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집에서는 부모의 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교육시스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쫓아가는 성공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 모습.
책<어쩌다 한국인>을 읽으며 와닿았던 부분은 '포기를 권장하자' 꼭지였다. 포기를 권장하지 않는 한국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이다.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한 청년의 비율로만 보자면 위에서 말한 선진국들도 한국 사회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차이는, 그들은 스스로 세속적인 성공을 포기할 기회를 어려서부터 아주 체계적으로 제공받아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삶 자체를 포기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포기한 세족적인 성공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다른 가치를 사회로부터 제공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종교, 문화, 예술, 봉사 등의 무엇이든 간에, 어려서부터 세속적인 성공을 이룰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느끼고 간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포기한 게 아니라 선택한 것처럼 느낀다. 아니, 실제로 선택한 거다. 자신이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해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왜? 그게 재미있고 의미 있으니까. 누가 칭찬을 해주지 않아도, 누구로부터 처벌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선택해서 산다.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소시민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청년에게 똑같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삶을 권하고, 강요하고, 칭찬한다. 한국의 교육체계에서는 세속적 성공과 그것을 위한 학업만이 거의 유일한 가치다. 그래서 한국 청년들은 세속적인 것 외에 다른 가치를 모른다. 그들의 포기는 진짜 포기다. 가진 것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그냥 실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포기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영원히 실패하는 거라고 강요한다.
마치 그들 때문에 한국 사회가 어려운 것처럼 얘기한다. 어찌 보면 그들은 실패자이자 피해자다. 취업을 못해서, 성공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평가할 다른 가치를 얻지 못했기때문에 재미와 의미를 잃은 실패자이자 피해자이다.
-<어쩌다 한국인>328쪽~329쪽-
나는 공대를 자퇴하고, 문대학에 재입학했다. 자퇴는 내 인생을 포기하는 기분이었고, 어떻게든 재빨리 '대학교'에 다시 들어가야하한다는 생각으로 몰아붙였다. 대안은 없었고, 다시 대학에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숏트트랙 경기에 참여한 선수가 한번 미끄지면, 얼른 일어나 앞서가는 선수를 쫓아가듯이 다시 본궤도에 올라야했다. 자퇴는 '불안'이었고, 학업 포기는 '더 큰 불안'이었다. 그 당시 나를 평가하는 가치는 '어디 대학교에 다니냐'였다. 내 의도와 달리 주변에서 그렇게 평가했다.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는 듯한 '비교'. 그 불안에 허우적대던 청춘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20대 초반부터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자기만의 가치를 계속 찾아야하지 않았을까. 중고등학교때부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더라면. 직장생활을 하며 무언가에 계속 휩쓸려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실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부터 휩쓸려왔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어쩌다 한국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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