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책인만큼 생각을 두텁게 해준다. 김광현 교수의 건축수업<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이 책을 읽으며 건축은 '땅위에 서 있는 철학자'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철학자는 바람과 햇빛, 물, 하늘, 사람, 공간을 사유한다.
건축의 본성은 아주 쉽게 말하면 이질적인 것의 타협에 있다. 아름다운 것과 실제적인 것,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구체적인 것과 간명한 것을 타협시키는 예술이 건축이다.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의 3요소'를 말하겠다고 하니 마치 이 요소와 저 요소를 합치면 잘 만들어 지는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그가 건축을 3요소로 말한 것은 서로 다른 세 가지가 잘 타협해야 한다는 뜻이다. 회화나 조각은 이런 타협을 본성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니 회화나 조각의 본질을 설명할 때 '회화의 3요소', '조각의 3요소'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52쪽-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이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은 외부와 단절된 나무의 심과 같고, 음표만 있을 뿐 음들의 사이가 없는 것과 똑같다. 음표는 도시에 존재하는 낱개의 건물과 같다. 음표와 음표 '사이'가 음악을 만들어내듯 건물과 건물 사이가 공간과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 건축을 전공하거나 건축을 교양으로 배우는 것은 이쪽과 저쪽의 무수한 '사이'를 발견하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좋은 건축은 무엇을 지향하지 않고, 무엇과 무엇의 '사이'에 있어왔다.
-90쪽-
사람은 사적인 것을 나눌(share)때도 있고 공적인 것을 나눌(share) 때도 있다. 둘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어떤 경우든 '셰어'는 각기 다른 주체들이 취미와 관심사를 공유해가며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까지도 받아들이는 현대적인 관계 맺기의 방식이다.
오늘의 도시에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셰어'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에 존재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셰어'의 또 다른 가능성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통한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며 이는 '지속가능한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공동체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별적인 주택이 모인 '주택 집합'에 대한 관심을 생활의 관계가 모인 '주거집합'으로 진지하게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130쪽~131쪽-
'building'은 이미 지어진 건물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여기에는 'building(짓기)'와 'build-ing(지어가기)'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build-ing'은 집을 짓는 과정, 지어지는 과정이며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상태를 말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건축은 과정(Architecture is the process)'. 건축은 물질로 지어져 중력에 대항하는 물리적 존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물질이 공간안에서 갖게 되는 관계다. 우리는 집을 지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과 환경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관여할 수도 있다.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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