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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독서노트(656)부유하고 있는가, 표류하고 있는가

by 이야기캐는광부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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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유하고 있는가. 표류하고 있는가.


 

강원중학교의 전설이었던 저자도 막상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들어가니 공부라면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성적으로 승부를 내기가 어려웠어요. 전범선은 자신의 특기를 고민하다 밴드를 시작하죠. 졸업 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한 전범선은 유학 시절 디제잉을 하며 딴따라로 거듭나요. 지금은 책방 풀무질을 운영하고 출판사 두루미의 발행인으로 일하며 해방촌에서 채식주의자로 삽니다. 


1등을 놓고 다투는 공부는 한 명의 1등과 무수한 나머지를 만들지만, 창작활동은 달라요. 내가 생각하는 바를 글이나 음악, 미술로 표현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기 브랜드를 만들 수 있거든요.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노래상을 받았다는 전범선의 노래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유튜브에서 찾아봤어요. 북 치는 자세를 보니 ‘삘feel’ 충만한 딴따라입니다. 91년생 저자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한국 사회는 부유해졌지만 청년 세대는 부유하고 있다. 각자 조각배처럼 둥둥 떠서 목적 없이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우리는 ‘엔N포 세대’가 아니다. 결혼, 집, 출산, 경력 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게 아니다. 나름의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표류와 부유의 차이는 크다. 전자는 구조해 주는 게 맞지만, 후자는 내버려 두는 게 좋다.
 
정처 없는 유랑 길에 목적지란 있을 수 없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도 없고 천국이나 극락도 없다. 하루하루 의미를 찾아가는 철저히 파편화된 개인주의적 존재다. 고양이의 표정에서, 잠깐의 산책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에서 이유를 얻는다. 오늘 당장 심연으로 가라앉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대성공이다.

 

민주화 이후 태어난 세대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리며 자랐어요. 이들은 배는 불렀지만, 여전히 목은 말라요. 기성세대의 근대적 가치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 시대에 빚진 마음이 없거든요. 사회가 부여한 역할이나 정해준 길이 그다지 탐탁지 않으니까요. 이들은 민족, 국가, 종교, 기업 등에서 의미를 찾지도 않습니다. 대신 사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누리기 위해 나의 일생을 돌보는 ‘갓생’을 추구하죠.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가 세상을 또 한 걸음 나아가게 할 거라는 믿음이 커집니다. 
부유하는 사람은 구조의 대상이 아니니 그냥 내버려 두라는 91년생 저자의 말이 68년생 아재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우리 역시 부유하는 세대입니다. 다만 우리는 내리막길에 서 있을 뿐이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첫 구절이 떠오릅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게 된 이상 더 버티지 않기로 했어요. 저의 역할은 끝났다고 느꼈으므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어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24년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려니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 밀리의 서재 책<외로움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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