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고뇌하는 기자의 경험담과 사색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기자가 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게 되리라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그저 믿음일 뿐이었지만요. 저는 언제나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들, 더 유명한 사람들, 더 호의적인 사람들, 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바빴습니다. 세련되고 논리 정연한 말투로 제가 듣기를 원하는 이야기를 콕콕 집어 주는 사람들을 찾길 즐겼습니다. 그동안 정돈되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그런 듯도 했습니다. TV에서, 라디오에서, 신문에서, 심지어는 인터넷에서도 그들의 말이 점차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정말로 그래도 좋은 것이었을까요.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김성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99504
청나라를 두루 돌아본 박지원 선생은 그곳에서 기와 조각과 똥오줌을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청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이 분명합니다. 지금보다 오가는 사절도 적고 소식도 뜸하니 사신이야말로 ‘트렌드세터’고 얼리어답터 격이 될 겁니다. 이름난 실학자요, 관심이 사방에 뻗친 선생이 그곳에서 과학과 문학, 예술이며 기술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을 만났을 건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장관으로 꼽은 게 고작 기와 조각과 똥오줌이었다니요. 황당함은 다음 대목을 읽으면 싹 풀립니다.
“무릇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일 뿐이다. (중략) 깨진 기와 조각도 내버리지 않고 활용하니 천하의 문채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깨진 기와 조각과 뒷간의 똥오줌에서 천하의 아름다움과 법도를 발견한 모습은 언제 읽어도 울림이 큽니다. 무엇에도 시선을 두고 귀를 열며 제 나름의 통찰과 식견으로 가치를 분별하는 역량이 이 짧은 이야기에 깃들어 있지요. 그저 값지고 화려하며 모두가 떠받드는 것만 바라보기 바쁜 많은 이들에게 이 태도는 얼마나 큰 배움을 주는가요. 선생의 글을 읽자면 오늘의 제 모습이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투명해지고 무력해지는 많은 소리를 그저 투박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일이 얼마나 창피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투명해지다 사라지는 것이 오직 떠드는 사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낮은 곳을 헤매며 투박하고 불편한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여, 마땅한 이들이 앞장서 그 책임을 저버린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거울 속에 제가 반쯤은 투명하게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김성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99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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