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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독서노트(669)아나운서는 뭘 하는 사람입니까?

by 이야기캐는광부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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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힘이 될 때>의 저자 최동석 아나운서가  KBS 입사 면접시험 3차 심층 카메라 테스트 때 받은 질문과 답변이다.

 

참 명답변이다.


 

“최동석 씨, 아나운서는 뭘 하는 사람입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는 「노인과 여인」Cimon and Pero이라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가슴을 빠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나라의 국립미술관에 어떻게 저런 포르노그래피가 걸려 있냐고 손가락질합니다. 하지만 사실 노인은 ‘음식물 반입 금지(아사형)’라는 형을 받아 굶어 죽어가는 투사였고, 여인은 갓 아이를 출산한 노인의 딸이었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기 위해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린 겁니다. 같은 그림이지만 누군가는 포르노그래피라며 손가락질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림의 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아나운서는 대중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왜곡 없는 진실을 전달함으로써 같은 그림을 보고도 눈물짓게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말이 힘이 될 때>, 최동석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95032

 

영국은 우리나라와 교통 체계가 다르다. 운전석도 반대쪽에 있고, 차량 진행 방향도 반대 방향이다. 가령 횡단보도를 건널 때 우리나라 사람은 차량이 오는 왼쪽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핀다면, 영국 사람은 차량이 오는 오른쪽을 더 주시하게 된다. 이재훈 셰프는 영국 여행 중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습관적으로 왼쪽을 주시하다가 오른쪽에서 달려오던 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을 가까스로 피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노인이 그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봐, 젊은이! 자네 죽기에는 아직 젊다고!”

  낯선 나라에서 자신의 실수로 사고가 날 뻔했다면, 그 상황이 꽤 민망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등장한 노인의 말은 민망함을 씻어내고 잠시 안도하며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혹은 실수로 인해 난감해할 때 아픈 말로 상대를 찌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횡단보도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차가 오는 방향을 보지 않고 길을 건너는 행인에게 혹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까?

   “이봐! 죽고 싶어 환장했어?”

   ‘말’은 상대의 감정을 보살피는 노력이 더해질 때 더욱 빛난다. 더구나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면, 서로 편안하게 웃으면서 안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위험에 처한 상대를 살피거나 도와주고도 굳이 날카로운 말을 뱉어내 뒤끝이 찜찜해져야 할까?

  우리나라의 ‘충청도 사투리’는 상대를 지적할 때조차 위트와 해학이 묻어난다. 원하는 것을 단번에 말하지 않고 돌려 표현하는 화법이 종종 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상대의 단점이나 잘못마저도 살짝 돌려 말하며 위트 한 스푼을 얹는 것은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필요한 여유와 배려의 화법이 아닌가도 싶다.

  충청도 사투리에 관련된 일화 중 한 가지만 소개한다. 한 학생이 축구를 하다가 정강이뼈에 금이 갔는데, 저녁때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너무 공부 열심히 하지 말어. 머리뼈에도 금 가면 어쩌?” 

 

- <말이 힘이 될 때>, 최동석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9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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