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6월 7일에 작성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영화<제르미날>을 보고 떠오른
사건 TOP3...그리고 넋두리
1. 들어가면서
영화<제르미날>은 19세기말 비참했던 광부노동자들의 삶을 뼈아프게 그려냄과 동시에, 그들의 처절한 투쟁의식을 담아낸 수작이다. 이 영화를 보고 불현듯 떠오른 3개의 사건!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을 볼 때마다 TV와 인터넷에 보았던 다음 3개의 사건들이 내 머릿속을 엄습해왔다.
-쌍용자동차 노조원 평택공장 점거 농성 사건
-서울 주요 4개 대학 반값 등록금 동맹 휴업
그러면서 새삼 깨달은 사실은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고, 우리들은 여전히 자본의 노예가 되어 불행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개인의 고통 혹은 특정한 집단의 고통은 쉽게 잊혀 지기 마련이다. 위 세 개의 사건들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에 있음에도 언젠가는 그 사건들도 먼지가 되어 누군가의 한 숨속에 휘날릴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고통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 고통의 기억들을 깨우는 세 개의 사건들을 돌아보며 나의 넋두리를 시작하련다.
2. 본격적인 이야기
2.1 칠레광부 33명 매몰 사건, 100년 전의 고통은 현재 진행중
앞서 말했듯이, 영화<제르미날>에는 광산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투쟁이 그려진다. 어느 날 이마에 돼지기름이 잔뜩 흐르는 광산 사장이 임금을 인하하겠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광부들에게 전달한다. 하루에 빵 하나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가난에 찌든 노동자들은 임금인하를 위한 회사의 억지주장에 반기를 들고 파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군대를 동원한 살인과 폭력뿐이었고, 결국 파업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영화의 말미에서 에티엔느의 독백만이 프랑스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을 배경으로 메아리칠뿐!
- 영화의 끝에서 에티엔느의 독백-
하지만 에티엔느의 말처럼 그 당시에 벌여졌을 노동자 투쟁은(영화'제르미날'은 에밀 졸라의 소설을 원작으로한 픽션이라고 하지만, 소설은 그 당시의 시대상과 인간군상의 희로애락을 드러내준다고 할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 임금노동자의 행복이 가득한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씨앗이 되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벌어진 칠레 광부 33인 매몰사건을 떠올리면 씁쓸하고 슬펐다.
당시 지하 700미터 아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69일 동안이나 갇혔던 33명의
광부들이 극적으로 구조되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퍼졌다. 사람들은 감동했고,
어둠속에서 하루 하루 썼던 일기들이 책으로 발간되며 숱한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백 여 년 전 광산 노동자들의 아픔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조된 칠레광부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지만, 지난 세월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 것인가! 영화 속에서 광산의 버팀목이 무너지면서 물이 가득차고, 수많은 광부들이 그 안에서 목숨을 잃었듯이 자칫하면 칠레광부들 역시 목숨을 빼길 뻔 했다. 다행히도 구조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소중한 아빠이자 남편을 잃은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우리네 아버지들 역시 광산에서 일하며, 고통에 신음하던 순간들이 많았다. 지금은 폐광촌이 된 강원도 철암의 어느 벽에 쓰인 광부의 하소연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 강원도 철암 폐광촌 어느 벽에 써 어느 광부의 글 -
목숨을 담보로 지하 깊숙이 석탄을 캐러 들어가야 했던 우리나라의 광산 노동자들. 손에 쥐어지는 것은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지폐 몇 장과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폐병뿐이었다. 아, 백년전의 광산노동자들의 고통과 눈물이 21세기에도 현재 진행
형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나저나 왜 우리는 이런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과연 이런 임금 노동자들의 아픔은 이 세상에 왜 생기기 시작한 걸까? 잠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던 당시의 유럽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2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자본가와 임금노동자의 대립관계 출현
유럽사회에 임금노동자들끼리의 연대, 즉 근대적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장제도가 생기면서부터다. 물론 근대적인 노동자 조직의 모습은 17세기 중엽의 영국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1666년에 결성된 ‘인쇄공조합’, 1667년의 ‘제모공조합’, 1671년의 ‘제모공조합의 지방연합’등의 모습의 노동조직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자 단체는 친목단체의 성격이 짙었고, 거기 모인 노동자들 사이에는 아직 노동자계급의 연대라는 의식이 없었다. 또 단결을 통해서 '사회주의'와 같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사상도 없었다. 산업혁명기에 이르러서야 '노동자'라는 계급의 연대가 가능했고, 영화<제르미날>에 나오는 광산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업혁명에 의해 공장제도가 확립되어 자본가와 임금노동자의 확실한 대립관계가 출현하였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연대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운명을 극복하는 사상으로써 사회주의 사상이, 수단으로서는 노동조합이 발생하면서, 이른바 근대노동운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근대노동운동은 거의 자본을 쥐고 있는 집단에게 그 꿈을 짓밟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도 빈번했다. 장시간 노동을 시키면서 그들의 건강과 휴식을 앗아갔다. 어린이 노동이라는 기형적인 노동형태도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인권유린은 수십 년 후 산업화의 붐이 일던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했던 1970년대에도 어린 여공들이 앉은키보다 더 낮은 천장아래서 하루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요즈음에도 청소년들을 납치에 새우 잡이 배에 팔아넘겨 수년간 부려왔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이 시대 임금노동자의 고통은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현재 진행형이고 끝나지 않은 것이다. 영화<제르미날>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2.2. 쌍용자동차 해고사건과 우리네 아버지들의 죽음
영화<제르미날>을 보며 이 사건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뇌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광산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보며, 쌍용자동차 점거 농성사건이 생각났다.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76일간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측의 구조조정 단행에 반발해 쌍용자동차의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것이다. 당시 회사측은 경영악화의 책임을 근로자에게 돌려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점거 농성자들이 법의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이 사건으로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의 지부장인 한상균을 비롯한 64명의 노조원들이 구속되었다.
또 해고 노동자가 돌연사하고, 그의 부인까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비극을 불러왔다. 고아가 된 자녀들은 하루 하루 부모를 잃은 고통속에서 신음했다. 당시 경찰이 진압과정에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테이저건을 사용하며 과잉진압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그 진압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던진 화염병에 불이 붙거나 쇠파이프 가격으로 다친 경찰들이 나오는 등 노동자들에게나 경찰들에게나 인명피해의 위험이 도사렸던 현장이었다.
▲ 쌍용자동차 노조원 부인들이 소복을 입고 시위를 하고 있다임금노동자들이 겪는 이러한 고통과 비극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3월 1일에는 경남 창원시 진해에서 쌍용자동차 희망퇴직자 조모(36)씨가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되었고, 2월 26일에는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반발해 77일간 공장 검거 농성에 참여했던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임 모(44)씨가 술을 마신 후 발생한 심근경색으로 집 방안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로써 2009년 4월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 이후 사망한 근로자 및 가족은 모두 13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처럼 영화<제르미날>은 이처럼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들춰내며, 잊고 있던 임금노동자들이 겪는 그 고통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와 더불어, 임금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지를 가슴깊이 되새기게 한다. 앞으로 임금노동자로 살아갈 아직 대학생인 나의 앞날에도 벌써부터 한 숨이 바람처럼 불어오기 시작하는 것은 왜일까?
2.3. 반값등록금 시위 그리고 공부가 아닌 노동을 하는 우리!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또 하나의 사건. 바로 10일째에 접어들고 있는 반값등록금 시위다. 갑자기 왜 이것이 떠올랐을까? 차근차근 이야기해보련다.
▲ 6월 7일 광화문 청계광장의 모습. 벌써부터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반값 등록금 이행 촉구 대학생들의 집회가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이 등록금 집회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벌써부터 청계광장을 경찰버스와 병력으로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학생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사실 나도 사립대에 6개월 정도 다닌 적이 있다. 비록 자퇴하고 삼수해서 2005년에 충남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말이다. 스무 살 때 400만 가까이 되는 등록금을 내기위해 부모님은 빚을 지셨다. 자퇴 후 수능을 보고 ,충남대에 다시 입학하고 나서도 빚은 쌓여만 갔다. 혹자는 국립대이니 등록금 걱정이 덜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처지가 그저 나은 것만은 아니다. 타지생활을 하는데다가 기타 생활비와 방값을 벌고 등록금을 내기에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벅차다. 그러면 국립대 학생들도 저이자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값등록금은 사립대 학생이든, 국립대 학생이든 모두에게 필요한 정책인 것이다. 다만 사립대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훨씬 절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반값 등록금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대학생.사실 우리 대학생들은 대학교에서 공부가 아닌, 노동을 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 문장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 된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그럴 것이라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대학교에 다닌 다면 한번쯤은 경험하기에 일반화시켜 말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이 대신 내주는 대학생들도 많이 있다. 나 역시 어떤 학기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직접 등록금을 벌기도 했고, 부모님께 등록금을 내달라며 염치없는 손을 벌리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의 허리는 휘어졌고, 어깨는 빚더미에 짓눌렸다.
반값 등록금은 우리 대학생들의 행복과 뼈빠지게 고생해도 하루 풀칠하기 바쁜 우리네 부모님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불행한 노동자다. 우리 대학생들도 대학교에서 공부보다 아르바이트에 치이며 신음하는 불쌍한 노동자다. 지난 해 저녁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고생했던 기억과 함께 학점이 무자비하게 털렸던(?) 것이 생각난다. 그저 서글프다.
3. 마무리 하며....넋두리
우리는 과연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확실히 대답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메어온다. 우리는 크나 큰 행복을 바라면서 취업이 결코 쉽지 않은 슬픈 현실 속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르미날>에서의 마뇌와 에티엔느도 투쟁을 벌이면서 실패를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들의 임금인상과 행복을 위해 싸웠던 것은, 그 곁에 소중한 가족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모른 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 대학생 친구들이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토록 싸우고 있는 까닭도, 너와 나, 내 친구와 네 친구, 내 부모님과 네 부모님의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영화 <제르미날>을 보며 한 숨쉬며 넋두리를 해본다. 슬프고, 가엾게...
<참고문헌>
이병련,「산업혁명과 산업화의 역사적 의미에 관한 고찰」,『사총』,2001
CBS 박종률 특파원 기사 :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604882
민중의 소리 정혜규 기자 기사 : http://www.vop.co.kr/A000004038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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