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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리뷰/국토대장정일기장

대학생들에게 국토대장정을 추천하고픈 소소한 이유

by 이야기캐는광부 201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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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뜨거운 여름으로 시계바늘은 돌아간다. 쨍쨍한 햇볕아래 해남땅끝에서 서울시청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나의 두 발. 이마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던 땀줄기. 함께 걸었던 북극팀의 형,누나,동생, 친구
들의 미소, 격려, 함성. 이 모든 것들이 내 청춘을 가슴 뛰게 했다.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에 박영석 대장님과 함께하는 5기 희망원정대에 참가하게 되었던 나.
수많은 대학생 참여프로그램중 꼭 해보고 싶었던 도전이었기에 무척이나 설레었다. 게다가 자비가 아닌 전액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국토대장정이어서 마음 편하게(?) 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640km의 국토대장정은 생각보다 무척 힘든 도전이었다. 공원을 거니는 산책이나,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답사와는 정말 차원이 달랐으니 말이다. 

보통 국토대장정을 한다고 그러면 주변의 반응은 이것
 
당시에 친척형은 내게 말했다.

"기욱아, 형은 자전거 타고 한번 해봤는데...다시 하라 그러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내 친구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군대에서 그만큼 행군했으면 됐지, 또 할라 그러냐?"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뭐랄까. 한번쯤 하고 싶었다. 혈기넘치는 20대의 무모함으로 한번 국토대장정을 완주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그냥 아무생각없이 해보고 싶었다. 20대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국토대장정은 속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도전해 보라는 것!

640여 km를 완주하고 모자를 하늘로 던지면서 환호하던 그 순간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국토대장정 완주가 과연 내 청춘에 어떤 변화르 일으켰을까? 여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3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 내보려 한다.


★ 국토대장정을 20대 청춘에게 추천하는 4가지 이유

1.국토대장정의 추억은 훗날 어느 힘든 순간에 되살아나 내게 힘과 용기를 준다



당시 걸었던 코스는 이랬다.

해남땅끝 -> 해남-> 영암-> 나주-> 광주-> 담양-> 순창-> 진안-> 무주-> 옥천-> 보은-> 충주-> 이천->
한남대교-> 서울시청


20여일 동안 우리나라의 산,들, 바닷길을 걸으며 마음속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구나'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 먼 길을 걸어다녔을까'



물론 이런 좋은 생각들만 떠 오른 것은 아니다.^^;

'아. 발바닥 ...겁내...아프네'
'언제 서울까지 가냐 ㅜㅜ'
'아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주저앉고 싶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곳곳의 풍경들에 대한 묘한 애정이 싹텄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풍경마다 가슴속에 소중하게 담기기 시작했다. 뭐랄까..원초적인 느낌이었다. 별 것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땅을 건강한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640km를 걸어서 완주하고나서,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며...

 

▲ 무주 진안의 고개를 넘어가던 중....여기가 어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믿음은 씨앗같은 것이었다. 

왜냐면 시간이 흘러도 가끔씩 그 때의 도전정신과 완주했을 때의 뿌듯함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국토대장정 완주의 추억은 씨앗처럼 마음속에 심어져 있다가, 어느 순간 새싹처럼 마음속에 돋아난다. 그럴 때마다 내 청춘에 새로운 힘과 용기를 가져다 준다.

'그 때 그런 힘든 도전을 했었지 , 앞으로 다른 힘든 일이 닥쳐도 헤처나갈 수 있을거야'라는 자신감과 함께 말이다.


2. 우리나라 땅을 두 발로 걷는 '발맛'이 일품이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발맛이라니..대체 발맛이 무엇일까?
'발맛'이 과연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낚시할 때 물고기가 입질할 때마다 느껴지는 손맛이 일품이듯이,
국토대장정할 때 직접 고국산천을 걸어보는 발맛이 일품이라고 말이다.
다시 정의를 내려보면 다음과 같다.

발맛: 20대의 건강한 두 발바닥으로 대한민국 땅을 걸으며 느끼는 쾌감


물론 아스팔트 도로를 사뿐히 즈려 밟고 걷다보면 고통이 엄습한다. 물집이 발바닥 전체에 잡히기 시작한다. 무척이나 따갑고 쓰라리다. 아스팔트가 햇볕에 달궈지면 그 뜨거운 열기가 척추뼈를 타고 올라온다. 살갗이 시커멓게 타고, 때론 그 껍질이 벗겨진다.

▲ 발맛은 대장정중에 먹었던 백숙만큼이나 맛이 좋았다.^^

또 어떤 문화 유적지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니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아니다. 그야말로 도전이다. 포기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걸어서 종단하는 일이다. 박영석 대장님이 남극과 북극을 종단하신 것에 비하면 작은 도전일지언정, 당시의 나에겐 처음 해보는 크나큰 도전이었다.

걷다보면 발바닥의 생각은 이렇게 변한다.

▲ 내 발. 나이키 운동화안에는 500원짜리 물집잡힌 발바닥이 들어 있었다.

설레임->재밌네->국토대장정 이거 할만하네->우아 풍경멋지다->따끈거림->뭐야 물집잡혔나->고통->으악...ㅜㅜ->언제까지 걷는거야->집에 가고 싶다->주저앉고 싶어->힘내자->화이팅->친구야, 힘내->물집이 굳어감-> 무딤->사뿐함->완주다! 야호!!!->벅참->쾌감->추억->그 당시를 떠올리면 흐뭇해지는 미소->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함박 웃음

20여일동안 발바닥을 통해 느낀 감각들을 표현해 본 것이다. 처음에 설레임으로 시작해서, 중간의 아픔과 시련을 지나면 그 끝에는 추억과 쾌감 그리고 미소가 자리잡는다. 국토대장정의 추억이 발바닥에 화석처럼 자리잡고야 만다.

▲ 아직 새카맣게 타기 전의 얼굴 모습. 대장정 1일차다. 탄 이후의 얼굴은 프라이버시상 올리지 않겠다.^^;

발바닥을 들여다보면 그 때의 풍경들이 쓱쓱 지나간다. 이 발맛은 그 어떤 추억보다도 오래가고 나의 20대 청춘에게 감동을 준다.



3. 핸드폰 없이 생활해 보는 20여일간의 야생은 또 다른 깨달음을 준다



당시에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우리들은 핸드폰을 모두 반납했다. 완주하고 나면 서울에서 다시 나눠줄 예정이었다. 핸드폰 없이 생활하려니 처음엔 손이 근질거렸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왜 전에는 자주 연락하지 않았나하는 후회감도 밀려왔다.

▲ 거의 대부분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우리에게 핸드폰은 없었지만, 편지가 있었다. 홈페이지에 가족들이 편지를 올리면 진행요원분들이 출력해서 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엄마, 아빠, 누나, 친구, 동생의 이름으로 전달된 편지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당시 응원과 격려의 글이 많았던 편지를 대장님이 직접 읽어주시기도 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군대에 있을 때 만큼이나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했다.

▲ 새카맣게 타버린 청춘.

핸드폰은 비록 없었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띵동거리며 울리는 문자메세지 알림음은 없었지만, 함께 텐트에서 잤던 친구녀석의 코고는 소리가 더 정겨웠다.
핸드폰 벨 소리는 없었지만, 옆에 있는 동료들이 내게 주는 '화이팅'이라는 소리가 더 반가웠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한 번도 함께 걸었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시간에, 수첩에 볼펜으로 국토대장정 일지를 적어 내려갔다.
때로는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들 모두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핸드폰이 없다고 하여, 세상은 단절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 더욱 끈끈해졌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핸드폰 없이 생활했던 그 당시의 체험은 특별한 것이었다.

핸드폰 카메라가 아닌, 나의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함께 국토대장정을 하고 했던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의 미소, 격려, 발냄새, 까맣게 탄 얼굴을 담을 수 있었다.


4. 함께 목적지에 이르는 법을 깨닫게 해주나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토대장정은 함께 목적지에 이르는 법을 깨우쳐 주었다. 우리는 서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참고 견뎌내어 도전에 성공했다. 힘든 사람이 있으면 격려해주고 끌어주며 함께 목적지에 이르는 법을 터득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남을 짓밟고 내가 더 잘되야 하는 경쟁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20여일의 시간동안은 나 혼자 잘 되고, 나 혼자 완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함께  완주에 성공하는 것이 소중했다. 뒤쳐지는 사람이 있으면, 어깨 동무를 하고 함께 걸었다. 앞서 가는 사람은 뒤쳐지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격려해지고, 화이팅 구호를 외쳐주었다.

그리고 응원가를 만들어 서로를 향해 힘차게 불러주었다. (당시 한라, 백두, 북극, 남극 4개의 팀으로 각각 30여명씩 나뉘어 걸었다. 나는 북극팀에 속해 있었다.)

"북극 걸어간다 쭉쭉쭉쭉~~계속 걸어간다~~"
"부으으우국, 오~오~오~오~, 완주를 위하여~~"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힘든 순간에 그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이 작지만 큰 깨달음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분명 큰 힘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국토대장정을 추천하는 이유다. 처음 무심코 시작했던 도전이, 나중에는 큰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 때 함께 걸었던 팀원들에게도 고맙다. 자주 연락하지 못하고, 자주 모임에도 못나갔지만 용서하리라 믿는다. 힘들때면 함께 걸었던 30여명의 북극팀 형, 누나, 동생, 친구들과의 추억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늘 가슴속에서 만난다. 그때마다 그들은 새카맣게 탄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며,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새하얀 이빨로 힘차게 응원가를 불러준다.

▲ 해남 땅끝 앞바다에서. 함께 걸었던 5기 희망원정대 북극팀^^. 모임 자주 못나가서 미안해용^^;


이 글을 읽으며 손발 오그라들고 있을 팀원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 함께 텐트를 썼던 북극 대원들 ㅋㅋ


☆  발바닥의 물집사진과 새카맣게 탄 얼굴 클로즈업 사진은 혐오(?)스러울까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한 북극팀원들의 사진을 이렇게 마음대로 올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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