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샘터 명예기자 게시판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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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표 작가의 <구멍가게>에서 추억을 건져 올리다
샘터에서 정근표 작가의 소설 <구멍가게>를 선물로 받았다.
때로는 책 한권이 목도 리와 털장갑만큼이나 하루를 따숩게 만든다. 겨울 여행을 아직 떠나지 못했다면 이 책을 통해 추억여행이라도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떨까?
책 <구멍가게>를 펼치면 주인 아저씨, 아줌마의 넉넉한 웃음소리가 들린다.문 앞에는 먹을 것을 훔치다 걸려서 벌 서고 있는 필자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 그곳엔 군것질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멍가게 하나로 오남매를 먹여 살리고자 했던 작가 부모님의 삶이 낡은 지붕을 너무나도 힘겹게 받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부모님은 사달라는 거 해달라는 거 모두 들어 주셨지. 우리 모두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남겨 놓고 작가는 이제야 부모의 마음을 알겠다고 고백한다.
책을 덮고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목욕탕에 얽힌 추억을 펼치고 있는 대목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갑자기 어렸을 적 엄마손에 이끌려 들어갔던 여자목욕탕 풍경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찬 눈동자를 껌뻑거리며 여탕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어머니의 이 말씀 한마디면 어디 숨고싶었다.
어머니는 내가 도망갈까봐 어깨를 세게 움켜잡았고 오른 손으로는 힘차게 때를 밀어 주셨다. 그래서인지 목욕탕문을 나서고 나면 항상 화상을 입은 것 마냥 온 몸이 빨갰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옻칠을 해놓은 것처럼 양 볼에 윤기나 났기 때문이다. 그날 필자는 깨달았다. 때론 어머니의 손이 아버지의 손보다 더 우악스럽고 거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회초리를 손에 들었을 때보다 어머니가 때타올을 낀 손을 들고 필자를 부를 때가 더 무서웠다. 이렇듯 목욕탕은 가족의 손길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좀 더 커서는 아버지를 따라 남탕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남탕문을 나설 때 빨간 색이 아니라 살색이었다. 어김없이여탕에서 나오는 어머니로부터 검사를 받았다. 내 목을 들여다 보고는 손가락으로 한번 밀어보셨다. 때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아버지는 잔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한 장을 읽고나면 한참동안 재미난 추억에 잠길 때가 많은 소설이다. 그렇기에 쉽사리 넘겨지지 않고 그 한 장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올 겨울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 하나를 건져올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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