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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

정근표 작가의 <구멍가게>에서 추억을 건져 올리다

by 이야기캐는광부 2009.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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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샘터 명예기자 게시판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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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표 작가의  <구멍가게>에서 추억을 건져 올리다

 샘터에서 정근표 작가의 소설 <구멍가게>를 선물로 받았다.

때로는 책 한권이 목도

리와 털장갑만큼이나 하루를 따숩게 만든다.  겨울 여행을 아직 떠나지 못했다면 이 책을 통해 추억여행이라도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떨까?

책 <구멍가게>를 펼치면 주인 아저씨, 아줌마의 넉넉한 웃음소리가 들린다.문 앞에는 먹을 것을 훔치다 걸려서 벌 서고 있는 필자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 그곳엔 군것질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멍가게 하나로 오남매를 먹여 살리고자 했던 작가 부모님의 삶이 낡은 지붕을 너무나도 힘겹게 받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부모님은 사달라는 거 해달라는 거 모두 들어 주셨지. 우리 모두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남겨 놓고 작가는 이제야 부모의 마음을 알겠다고 고백한다.

'구멍가게집 자식이었던 우리들은 그 시절 고생했던 일들을 회상하며 마치 남의 말 하듯 쉽게 이야기 했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니 아버지께서는 단 한차례도 그 때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우리들에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세월이 아버지께는 고단한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시절의 아버지 나이를 훌쩍 넘기도록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 <구멍가게> 에필로그 中 -

책을 덮고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목욕탕에 얽힌 추억을 펼치고 있는 대목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목욕이 끝나면 여탕에서 나오는 어머니를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양볼은 발그스레하게 윤이 나야 했고 손가락은 물에 오래 담겨 있어 쭈글쭈글 기름기가 빠져 있고 발뒤꿈치는 굳은살이 벗겨져 손으로 만져 보면 미끌거려야 했다. 비싼 돈을 들여 한 목욕이니 만큼 어머닌 세심하게 삼 형제의 몸을 살폈다. 만약 누군가가 불합격이 되면 그건 전적으로 아버지 책임이었다."    - 정근표의 <구멍가게> 中-

갑자기 어렸을 적 엄마손에 이끌려 들어갔던 여자목욕탕 풍경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찬 눈동자를 껌뻑거리며 여탕안을 휘젓고 다니다가 어머니의 이 말씀 한마디면 어디 숨고싶었다.

"아들, 때밀게 이리와!". 

 

어머니는 내가 도망갈까봐 어깨를 세게 움켜잡았고 오른 손으로는 힘차게 때를 밀어 주셨다. 그래서인지 목욕탕문을 나서고 나면 항상 화상을 입은 것 마냥 온 몸이 빨갰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고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옻칠을 해놓은 것처럼 양 볼에 윤기나 났기 때문이다. 그날  필자는 깨달았다. 때론 어머니의 손이 아버지의 손보다 더 우악스럽고 거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회초리를 손에 들었을 때보다 어머니가 때타올을 낀 손을 들고 필자를 부를 때가 더 무서웠다. 이렇듯 목욕탕은 가족의 손길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좀 더 커서는 아버지를 따라 남탕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남탕문을 나설 때  빨간 색이 아니라 살색이었다. 어김없이여탕에서 나오는 어머니로부터 검사를 받았다. 내 목을 들여다 보고는 손가락으로 한번 밀어보셨다. 때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아버지는 잔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한 장을 읽고나면 한참동안 재미난 추억에 잠길 때가 많은 소설이다. 그렇기에 쉽사리 넘겨지지 않고 그 한 장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올 겨울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 하나를 건져올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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