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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늬를 찍어내는 셔터소리 / 바다의 기별 / 김훈

책노트

by 이야기캐는광부 2009. 12. 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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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 김훈

읽다말고 그의 보석같은 문장을 옮겨적어 본다. 소라 껍데기를 닮은 책. 가만히 그의 문장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청명한 소리가 들려온다. 문장은 때론 읽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을 수도 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론 타이르는 할머니 목소리처럼 가끔은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퍼지는.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바다의 기별中 -

닿지 못하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등대는 어쩌면 바다를 가슴에 품고 있을 수도 있고, 만져지지 않는 밤하늘의 별 하나 하나도 사랑의 모습일 수 있다. 연습장에 연필로 꾹 눌러쓴 누군가의 이름처럼 마음속에서 메아리칠뿐 소리내어 불러보지 못하는 것이 짝사랑의 모습인 것 처럼.

'아직 살아 있는 나는 죽어 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마지막 망막의 기능으로 아직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마지막 망막에 비친 살아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죽어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 줌의 공기나 바람은 아니었을까.'

- 무사한 나날들中-



 
삶은 한 줌의 공기와 바람일까?  사람은 한 줌의 공기로 순간을 살아가고 꽃은 한줌의 바람에 흔들리니 맞는 말 같다.

'글을 쓸 때 내 마음속에는 국악의 장단이 일어선다. 일어선 장단이 흘러가면서 나는 한 글자씩 원고지 칸을 메울 수 있다. 이 리듬감이 없이는 나는 글을 쓸 신명이 나지 않는다. 내 몸속에 리듬이 솟아나기를 기다리른 날들은 기약없다.'

- 글과 몸과 해금中 -


 
글을 쓸 때면 아직 칠흑같은 우주를 다 여행하지 못한 별빛이 되버린 듯하다. 분명 생각은 별처럼 저 멀리서 반짝 반짝 하고 있지만

종이에 하나의 문장으로 닿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많은 소방대원들이 암흑과 화염속에 고립되어 있다가 동료들에 의해 구출되었다. 고립된 대원들이 그 암흑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는 살아서 돌아 올 수 있었다.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

-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中 -

 다가오고 있는 여자의 구두굽 소리,그것이 남자의 희망일 때도 있다.

 이 책에서는 문장 문장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무늬를 찍어내는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삶속에 담긴 풍경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 곳에 가면 아버지, 젊은 시절에 기자였던 작가의 치열함, 박경리 선생과의 우연찮은 만남, 죽음에 관한 성찰, 일상, 사랑, 60,70년대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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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24 01:12
    도대체 이렇게 글을 잘 쓰려면.. 얼마나 많이 써야 할까요.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시던 김훈 선생님.. 책 꼭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