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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에세이/일상끄적

자취생에게 100원은 가끔 왕이로소이다

by 이야기캐는광부 201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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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에게 100원은 가끔 왕이로소이다



어디다 돈을 다 썼는지 지갑이 텅텅 빈 어느 날이었다.

100원짜리 하나를 찾기 위해 침대 밑을 뒤지고, 책상에 놓인 책 아래를 뒤지고, 십원짜리를 모아놓은 컵을 뒤지고, 가방 주머니를 뒤지고, 청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가장 싼 라면 하나가 700원이 조금 넘는데 100원이 모자라서 못사먹을 판이었다. 이놈의 동전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보였다. 5분여를 뒤졌을까. 낮은 포복자세로 방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드디어! 침대 밑 저 깊은 어둠속에 갈치처럼 은빛을 내고 있는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찾았다. 한쪽 뺨을 방바닥에 찰싹 붙이고 동전을 꺼냈다. 동전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다.


"뒤지게 찾았구먼. 빨리 빨리 기어 나와야지. 뒤지고 싶냐".하고 말이다. 동전에는 귀도 없고, 입도 없으므로 내 말을 들을 리도 대꾸할리도 없었겠지만. 그런데 막상 100원짜리를 힘들게 찾아 손에 꼭 쥐고 나니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었다. 요리 보고 저리 돌려 보았다.


지갑에 만원짜리가 몇 장있을 때는 거들떠도 안 본 방바닥의 동전들인데, 갑자기 빈털털이가 되니 그 100원도 무척이나 아쉬웠다. 1초도 안되어 허리를 굽힌 후 오른 손가락으로 후다닥 집으면 될 것을 무엇이 귀찮다고 방구석에 내버려두었나 모르겠다. 또 그 100원짜리를 보고 좋다고 희열에 찬 미소를 짓는 내 모습.쩝.


어쨌거나 추리닝과 슬리퍼를 신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주머니에는 아까 찾은 100원과 나머지 700원이 딸랑거리며 기분좋은 소리를 냈다. 가서 라면 하나를 겨우 샀다. 방에 돌아와서는 얼른 라면 한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에 끓였다. 김치와 함께 면발을 후루룩 들이키는 이 쾌감. 


라면을 먹고, 국물까지 쭉 들이 킨 후 포만감에 찬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일어나서 냄비를 치우려고 한 찰나 책상 밑 저 구석에서 은빛을 내고 있는 100원짜리 동전이 눈에 띄었다. 아까 찾을 때는 그렇게 없더니만, 이제야 제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어쩌랴. 신하가 왕에게 절을 하듯, 친히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구부려 책상밑으로 기어들어가서 그 100원짜리 왕을 알현했다. 그 순간 만큼은 100원짜리가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 100원짜리 왕은 전에는 하찮게 홀대 받다가, 시간이 흐르니 이렇게 대접을 받는다. 인간지사 새옹지사라 하지만은 동전지사도 역시 새옹지마가 아닌가 한다.이번에는 그 100원짜리 동전 줍는 일을 무한정 미루지 않고, 곧바로 주워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었다.


살다보면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전에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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