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반추하는 동물 소를 닮은 책
1. 박웅현의 책은 반추하는 동물 소를 닮았다
텁텁한 방구석에서 '우유속에 모카치노 커피'를 홀짝이며 이 책을 읽었다.
책<책은 도끼다>를 읽노라면 소 한마리가 되어 여물을 꼭꼭 씹어먹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전에 만났던 문장들을 곱씹게 되고 새로운 의미를 느끼며 반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광고인 박웅현씨는 평소에 다독보다는 한달에 3권 정도의 책을 깊이 읽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언뜻 보면 저자 자신이 감명깊에 읽은 책에서 엑기스 문장만을 뽑아 수록한 책같지만, 평소 책 한 권일지언정 꼼꼼이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쓰기 어려운 책이다. 이 책은 경기창조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인문학 강독회의 내용을 모아 묶어 낸 것이자, 저자가 감명깊게 읽은 책들을 자신의 인문학적인 시각을 더해 맛있게 풀어 쓴 책이다.
박웅현씨를 통해 '이 작가의 이런 문장이 이런 뜻과 울림을 지니고 있었나'하고 새삼스레 놀라게 되었다. 그와 같은 책을 보았으면서도, 당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장과 느낌들을 오랜 내공으로 독자들앞에 톡톡 건져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책속에서 여러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매력이었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그가 책속에서 이야기한 책들의 목록을 친절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 책을 읽고 고은씨의 '순간의 꽃'이라는 책을 주문하기 까지 했다.
2. 박웅현의 책을 통한 김훈의 재발견
그가 언급한 책들 중에서 '칼의 노래'로 유명한 김훈의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듣고 읽어보지는 못한 책이었는데, 박웅현씨가 이 책속의 문장들을 하나 하나 소개 시켜주는 동안 찌릿찌릿했다. 예를 들면 책<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냉이된장국'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된장과 인간은 치정관계에 있다.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 건더기와 인간은 삼각 치정관계이다. 이 삼각은 어느 한쪽이 다른 두 쪽을 끌어안는 구도의 치정이다. 그러므로 이 치정은 평화롭다.(...)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속으로 스미는 햇볕의 냄새, 싹터오르는 풋것의 된장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놓는 평화를 이루고 있다.
- 80쪽, 책에서 인용된 책<자전거 여행> 김훈의 글 -
'치정'은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을 뜻한다. 냉이된장국 한 그릇을 된장 국물, 냉이, 인간 사이의 삼각 치정관계로 보다니 이색적이고 뛰어난 관찰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았으면 그냥 '맛있다'라는 단어로 표현했겠지만 작가 김훈의 경지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풀어 내었다.
김훈의 미나리에 대한 묘사도 독창적이면서 날카롭다.
미나리는 발랄하고 선명하다. (...)그러므로 미나리는 된장의 비논리성과 친화하기 어렵고 오히려 고추장의 선명성과 잘 어울린다. 봄 미나리를 고추장에 찍어서 날로 먹으면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과 전혀 다른,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해주는 전혀 새로운 날들이 우리 앞에 예비되어 있음을 안다.
- 84쪽, 책에서 인용된 책<자전거 여행> 김훈의 글-
박웅현씨는 책속에서 이런 '김훈의 작가로서의 눈'을 부러워한다. 나도 부러웠다. 그야말로 김훈의 재발견이었다. 그의 소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통해 만난 적이 있지만. 김훈이 이처럼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 건 박웅현씨의 책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김훈의 자두에 대한 에로틱한(?) 묘사를 살펴보자.
자두의 생김새는 천하의 모든 과일들 중에 으뜸으로 에로틱하다. 자두는 요물단지로 생겼다. 자두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에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박의 향기는 근본적으로 풀의 향기다. 풀의 향기가 수분에 풀려서 넓게 퍼진다. 자두의 향기는 전혀 다르다. 자두의 향기는 육향에 가깝다. 그 향기는 퍼지기보다는 찌른다. 자두를 손으로 만져보면, 그 감척은 덜 자란 동물의 살과 같다. 자두는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이 통째로 먹는다. 입을 크게 벌려서, 이걸 깨물어 먹으려면 늘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이 안쓰러움이 여름의 즐거움이다.
- 88쪽, 책에서 인용된 책<'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의 글 -
책 <책은 도끼다>를 읽는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유명한 책들의 명문장들을 만나고, 이에 대한 박웅현씨의 울림을 주는 잔잔한 해석과 만날 수 있다는 점. 그의 해석을 읽고나면 아 이런 문장이 이런 뜻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보통 어떤 유명한 작가의 문장을 읽으면 다 이해하지 못해 배고픈 느낌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온갖 재료가 섞인 순대국밥을 먹는 것처럼 시원하고 포만감이 있다. 더불어 책을 읽고 싶은 뜨끈한 열정이 위장을 타고 흐른다. 덤으로 책속에 소개 된 명문장들을 볼 때면 소주 한 잔기울일 때의 감탄사가 나온다. 캬~!
3. 책속의 책
이 밖에도 소개하고 싶은 문장과 해석이 많지만 여기서 멈추련다. 책을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대신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된 수십가지 책들의 목록중 몇 권을 공유하려고 한다.
4. 이 책이 가져다 준 깨달음
앞서 말했듯이 박웅현씨는 다독보다는 한 권의 책이라도 깊이 읽기를 추천한다. 보통 다독을 통해 많은 책을 읽으려고 욕심부리는 경우가 많다. 책 내용을 정리하지 않고 깊이 사색하지 않는다면 머릿속에 남는 이야기들은 그리 많지 않다. 책속에서 박웅현씨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장의 의미들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독서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한 권이라도 깊이 뜯어 읽자는 생각으로 말이다.
책은 사람과 같아서 한 번 만나서는 제대로 알기 어렵다. 두 번, 세 번 만나도 감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 대신 책속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용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는다면 그 책과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 그래야지 책을 오해하지 않고 저자가 주는 울림을 진심으로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은 도끼다>는 다독하는 경향이 많았던 나의 독서습관에 그 야말로 도끼를 내리쳤다.
그리고 저자가 제일기획에서 TBWA로 회사를 옮길 때 후배들이 적어 선물로 줬다는 시인 고은의 <낯선곳>의 글귀가 기억에 남았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 고은, <낯선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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