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제윤 시인의 산문집, 섬바람 가득안고 불어오는 따스한 에세이
강제윤 시인의 산문집<자발적 가난의 행복>을 가을 날 오후에 귤을 까먹으면서 읽었다.
산문집은 천천히 호흡하며 읽게 된다. 헐레벌떡 뛰어가며 급히 읽으면 체한다. 어떠한 지식이 남기보다는 어떤 느낌이 남는다. 강제윤 시인의 산문집에는 섬세한 섬바람이 부는 듯하다. 섬바람은 어떨 때는 차기도 하지만 볼살을 부비며 따뜻할 때도 있다. 보길도에서 생활했던 이야기가 많이 담긴 탓일까. 생활 곳곳에서 몸으로 부딪혀 견져올린 그의 깨달음과 마주하노라면 마음에 파문이 인다.
그의 산문 곳곳에는 섬의 자연과 섬에 살고 있는 동물에 대한 어울림과 애정이 자리잡고 있다. '물고기에 대한 예의, 흑염소 해산기, 아기 염소의 죽음, 진돗개 봉순이 해산기' 와 같은 제목의 글을 보고 있으면 그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섬에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 사람의 애환과 이야기가 중간중간 가슴속에 파도처럼 철썩거린다. 산문은 크게 1장 '보길도 시절'과 2장 '청도 한옥학교에서 보낸 한철'로 나뉜다. 이 산문집은 '삶'이라는 이름의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장편의 시같기도 하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나눔 이전의 나눔이며 가장 큰 나눔의 실천'이라고 말하는 그를 보면 한 명의 수도자 같기도 하다.
작가는 2006년 청도한옥학교 졸업후 티베트에 다녀온 뒤 한국의 사람 사는 섬 500개를 모두 걷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섬순례길에 올랐다. <올레, 사랑을 만나다>, <섬을 걷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숨어사는 즐거움>,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의 책을 펴냈다.
2. 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
작가가 태초의 인류에 대해 상상한 장면
사람과는 달리 염소나 개 등 다른 동물들에게는 새끼를 낳는 일이 그다지 유별난 의식이 아닌 듯합니다.
태초에는 사람도 저러지 않았을까. 열매를 따고, 뿌리를 캐다가 들에서 산에서 아이를 낳고, 혼자 탯줄을 끊고, 제 속에서 나온 애기보를 먹어 치우고, 제 혀로 아이 몸에 묻은 피를 핥아서 씻겨 주고, 아이를 풀밭에 풀어 두고, 다시 흔연스럽게 열매를 따지 않았을까. 아이들 또한 방금 태어나 일어서는 염소처럼 엉금엉금 기다가 이내 혼자 일어나 걸어 다니지 않았을까.
- 44쪽 -
책속 '그 가을날의 저녁의 천황사' 글에 나오는
늙은이가 말이 길었지요. 늙으면 다 그런다오. 잘 가시오. 어쨌든 건강하시오. 건강하고 밥 세끼 안 굶고, 마음 편하면, 그것이 극락이오. 극락이 어디 따로 있겠오.
-83쪽-
아타라시키무라 마을 입구 일주문에 새겨진 글귀에 대해
'이 세상에는 사랑할 것이 많다. 사랑하는 일은 즐거움이 된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래도 사이좋게'
'하늘에는 별, 땅에는 꽃, 사람에게는 사랑.'
너는 너, 나는 나, 그래도 사이좋게. 독립된 개체로서의 인간을 완전하게 존중하면서 조화로운 공동체를 꿈꾸었던 무샤노코지의 사상이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섣부른 예단일까요.
강제윤 시인이 아타라시키무라 마을 와타나베 노인을 인터뷰 하며
공동체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만들어서 먹고 생활하자는 것이지요. 바르게 살자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르게 살려 나가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결코 타인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동체 정신입니다.
-92쪽-
강제윤 시인의 자발적 가난에 대한 단상
가난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나눔 이전의 나눔이며 가장 큰 나눔의 실천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노력할 때, 이 세계의 모든 가난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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