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은 책<더불어숲> 개정판 서문에서 "21세기를 시작하면서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전망하던 때에 쓴 글"이라며 "그러한 성찰과 모색은 변함없이 지켜야 할 우리들의 정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영복은 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 베트남, 인도, 독일, 런던, 브라질, 페루 등 세계각국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돌이켜보며 끊임없이 사색한다. 우리가 가꿔나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있는지도 모른다..동네카페에서 단숨에 읽어내려간 책<더불어숲>. 신영복은 과거의 역사적인 순간을 곱씹고,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직접 체함하며 오늘을 사는 '나' 혹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의 메시지는 한 개인이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데 보탬이 되기도 한다. 그는 떠났지만 우리 곁에 주옥같은 책들을 남기며 늘 함께하고 있다.
여행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9쪽-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 망亡아 아니라 도道가 없어지는 것을 망이라 했던 고인古人의 역사관을 수긍한다면 국가란 문명을 담는 그릇이 못 되고, 문명은 국가라는 그릇에 담기에는 너무나 크고 장구한 실체인지도 모릅니다.
-45쪽-
'우리는 이겼다'는 외침과 '나는 이겼다'는 외침 사이에는 참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가 우리들로 하여금 쓸쓸한 감상에 젖게 하는 까닭은 아마 아직도 '내'가 '우리'를 이겨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철학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46쪽-
우리들은 저마다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기에게 없는 것,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이곳 이스탄불에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다만 이러한 내면의 애정이 관용과 화해로 개화할 수 없었던 까닭은 지금까지 인류사가 달려온 험난한 도정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이 가파른 길을 숨가쁘게 달려왔기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목표였건 그것은 그것은 나중 문제입니다.
-59쪽~60쪽-
진정한 문화란 사람들의 바깥에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성에 씨를 뿌리고 사람들의 관계속에서 성숙해 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네팔에서 만나는 유년시절과 그 유년시절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와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이야말로 그 어느때보다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82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후지 산 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냉혹한 백설과는 달리 그 인색한 눈 녹은 물로 살아가고 있는 아사쿠사의 삶은 우리가 베워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만나는 지나칠 정도의 친절에 대해서도 그것이 속마음이 아니라고 폄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서슬 퍼런 사물라이들의 일본도 아래에서 살아오는 동안 차디찬 돌멩이 한 개씩 가슴에 안고 있는 외로움때문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비록 쓸쓸한 것이라 하더라도 온 몸에 배어 있는 절제와 겸손은 우리들의 오만과 헤픈 삶을 반성할 수 있는 훌륭한 명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94쪽~95쪽-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발견한 것은 이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었습니다.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은 물론 이 도시에 묻혀 있는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 유적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이곳에서 심혼을 불사르고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함께 껴안는 애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애정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08쪽-
청산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것입니다. 단죄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책임짐으로써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청산입니다. 굳이 베를린이 아니라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이 세계의 어느 곳이든 기적의 번영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전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우슈비츠는 단지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찬미하는 모든 '번영의 피라미드'에 바쳐진 잔혹한 희생의 흔적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내면보다는 외형의 화려함이 우리의 시선을 독점하고 있는 오늘의 풍토에서는 전도된 가치가 얼마나 끔찍한 희생을 동반하는가를 묵상하는 제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14쪽-
우리의 통일은 남북의 갈등과 차이, 모순과 증오까지도 정반합의 창조적인 지양을 통하여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세계 최장의 분단세월, 동족상잔의 고통을 짐 지고 왔던 만큼 한반도는 새로운 창조의 산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와 함께 21세기의 문명사적 과제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내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요원한 통일에의 도정을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더욱 쓸쓸하게 하는 것은 통일 독일이 20세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도리어 민족적 정염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우려라든가, 우리의 통일에 대하여 부여하라는 문명사적 소명도 사실은 우리들의 이러한 낙오감을 달래려는 가난한 자위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124쪽-
낡은 틀이 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138쪽-
로마의 유적에 대한 찬탄이 새삼 마음을 어둡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곧 제국에 대한 예찬과 동경을 재생산해 내는 장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문화유산 가운데 40%가 로마에 있다는 사실은 세계사의 현주소를 걱정하게 합니다.
-147쪽-
이집트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을 뿐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그 허무함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우리가 쌓고 있는 것들 중의 얼마만큼이 남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열중하고 있는 오늘의 영조물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후세의 피라미드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리고 과연 피라미드만큼 육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집니다.
-156쪽~157쪽-
꿈은 우리들로 하여금 곤고함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동의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꿈은 발밑의 땅과 자기 자신의 현실에 눈멀게 합니다. 오늘에 쏟아야 할 노력을 모욕합니다. 나는 이것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우리 세기가 경영해 온 꿈이 재부와 명성과 지위와 승리로 내용을 채우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꿈의 유무에 앞서 꿈의 내용을 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217쪽~218쪽-
우리는 아직도 '잘 자란다'는 의미에 마음을 쏟을 여력이 없습니다. 경쟁과 효율성 등 사람을 해치고 사람과의 관계를 갈라놓는 일의 엄청난 잘못을 미처 ㄷ로이켜 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찍부터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언제나 후회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68쪽-
오늘날 베트남 역시 관리들의 부정, 밀수, 매춘 등 각종 사회 부조리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방 과정에 있는 다른 나라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결정적인 차이는 '윗물이 맑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국가 지도층의 청렴성과 헌신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설령 아랫물이 혼탁하다고 하더라도 윗물이 맑기만 하면 그것은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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