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침묵은 단순히 말없이 아니다. 언어를 넘어서 세계에 대한 경외심으로, 거기에서 울려 나오는 의미를 겸허하게 기다리는 것이 침묵이다. 존재의 근원적인 바탕을 더듬으면서 보다 명료한 진실을 갈구하는 간절함이 거기에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공백이 아니라 여백이다. 다라서 침묵은 경청의 이면이다. 언어의 격조가 사라지는 것은 진지하게 귀 기울여주는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발언이 수용되지 못하리라는 불안에 사로잡히고 그 반작용으로 자극적인 언어를 남발한다. 그럴수록 서로에게 귀를 닫아버린다.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기과시나 지배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온전히 향하는 마음을 불러와야 한다.
폭언, 극언, 망언, 실언, 허언 등으로 소란한 우리의 언어 세계를 가다듬고 의미의 비옥한 터전으로 일궈가는 일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경외감을 회복하는 가운데 이뤄진다.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깊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 무엇을 기다리는 무언의 경지에 이르러 살아 있음의 뉘앙스를 새삼 느낄 때 우리의 목소리는 청신한 빛깔로 재생된다. 품격 있는 언어는 내면의 울림으로 자아와 관계를 빚어내고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96~97쪽-
SNS 시대에 글쓰기는 무엇인가. '좋아요'라는 반응을 독촉하는 자아의 진열이 아니라, 의식과 감성을 서로 향상시키는 집단 지성의 즐거운 체험이어야 한다. 독단에 빠지기 쉬운 생각을 점검하고 흐트러지기 일쑤인 마음을 정돈하는 절차탁마의 글쓰기, 그것은 외로운 고행이면서 공동의 놀이일 수 있어야 한다.
-93쪽-
멋이란 무엇인가. 김태길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정규와 정상을 약간 벗어나서 파격적인 데가 있으면서도 크게는 조화를 잃지 않는 것을 대했을 때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정말로 멋있는 사람은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타인과 부드럽게 어울릴 줄 안다. 자신의 소신과 직관에 충실하면서도 세계에 드넓게 열려 있다. 자유는 안과 밖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기운생동이다.
-47쪽-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 그냥 내버려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 오는 /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꽃잎들을 모아 간직해두는 일 따위에 /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 제 머리카락속으로 기꺼이 날아 들어온 / 꽃잎들을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 사랑스런 젊은 시절을 행해 .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인생이란)
-35쪽-
김찬호의 <눌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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