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의 자전적 소설<더러운 책상>. 작가가 작가가 되기 이전, 작가의 내밀한 자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나의 목젖 어딘가에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을, 시커먼 어둠속에서 눈을 번쩍뜨고 있을, 아직 꺼내지 못한 이야기. 해석하기 어려운 초음파를 보내는 내 원초적 자아와 마주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대문이 닫히고 나면 신작로는 일시에 텅 빈다.
그가 무섭고, 더럽고, 수치스럽게 걸어온 젊은 날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내가 평생 사랑했고, 또 가장 미워했던 열여섯 살의 그가 사용한 관뚜껑은, 말하자면 녹슨 함석이다.
관뚜껑을 닫으면 그가 없다.
그의 젊은 한시절이 모두 그럴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존재하지만 없는, 없지만 존재하는 그의 젊은 한시절에 대한 기록이다. 사랑했으므로 때론 눈물겹고 미워했으므로 때론 가열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기록 속에 그의 어떤 한 순간, 그의 어떤 한 빛깔도 가두지 못할게 확실하다.
그가 너무도 자주 그 함석대문을 닫기 때문이다.
아니 함석대문을 활짝 열어준들, 내가 투명한 햇빛 청량한 바람이 아닐진대, 어떻게 그의 살과 뼈를 관통해 지나갈 것인가. 고백하건대, 이 기록은 그러므로 그를 가장 사랑하고, 그를 가장 미워해온 내 분열이 가져다준 죄업의 산물이다. 나는 그에 대해 열심히 말할 터이지만, 그것은 겨우 나의 어느 한켠을 흐릿하게 비추는 결과에 불과할 것이다.
가령 그가 열여섯에 보았던 밤열차의 경우처럼.
-17쪽~18쪽-
물 속에 비친 자신은 어둠침침해서 보기에 편안하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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