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에서 누구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하다. 이 단 하나의 경우 말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53쪽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인용 부분-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主義)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권력자가 주관적으로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행사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57쪽~58쪽-
국가와 정부를 구분하는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부가 국가대신 행동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같은 국가도 정부가 바뀌면 성격과 행동양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어느 시기에 국가가 악을 저지른다고 해서 반드시 국가를 폐지할 필요는 없다. 정부 또는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교체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가는 영속하는 가운데 정부를 교체함으로써 국가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굳이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하여 사회의 기본 질서를 일거에 바꾸는 사회혁명을 할 필요가 없다. 자유주의자들이 사회혁명을 반기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이다.
-69쪽-
만약 최선의 인물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도록 보장하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은 "정치제도를 어떻게 조직해야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더라도 악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느냐"로 넘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퍼는 이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법으로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는 국가를 잘 통치할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과 정당을 국민이 선택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관자인 국민 모두가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보통선거제도가 그런 사람과 정당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도 그러려니와 세계 각국의 경험을 보아도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을 맡긴 예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틀러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이 보통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한 권력자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악하거나 무능한 또는 둘 다인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115쪽-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0% 아래로 떨어지고 80%에 육박하는 압도적 탄핵여론이 조성되자 미디어를 왜곡함으로써 중우정치를 조장했던 언론인들은 대통령의 어리석음과 비선실세 인사들의 저질적인 행태를 비난하는 선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주권자의 판단착오를 조장했던 자기네의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따라서 언론은, 특히 이념형 보수(국가주의)와 시장형 보수(보수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거대 신문 방송의 권력자들(사주와 고위 경영진)은 앞으로도 같은 행동을 하리라고 보느느 게 합리적이다. 자기네가 선호하는 정치세력의 국가권력 장악을 돕기 위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 세력과 정치인에게 불리한 정보를 감추거나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정보를 왜곡 해석하려는 보도태도를 견지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희 중우정치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미디어 왜곡과 여론조작으로 인한 중우정치의 위험은 우리의 발밑에 똬리를 틀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대안미디어를 활용해 언론권력의 여론조작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위험에 또 발뒤꿈치를 물리게 될 것이다.
-124~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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